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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인 도 India

아그라여행/타지마할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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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아그라여행/타지마할


아직도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죠!? ㅎ


너무나 잘 아시는...타지마할~

이곳 왕 샤자한 왕의 슬플 사연...


간혹

우리의 가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 노래가...귓가에 맴돈다...


타지마할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신 분은..

사진을 클릭 ^^;;;


그럼 

뿌나 이야기

인도여행/인도 사자한 아내 뭄타지마할을 그리워하며 만든 타지마할 잘있겠죠...^^;;;

다시보기 됩니당..ㅎㅎ



인도를 세번 방문했고...

타지마할은 두번째인데..

이렇게 안까지 들어가보는 것은 

처음입니다..ㅋㅋ


이해 못하는 뿌나의 여행 스타일...

우리나라 옛무덤도 안가는 뿌나..

해외까지 가서 굳이...


그런 듯 뿌나가 나이가 들면서...

쪼매 변했습니다.

그래서 담았습니다.


본전(?) 생각나서 엄청시리

사진을 담았습니다.


비록 포스팅하는 것은 몇장 안되지만...

엄청 많습니다.

혹여 필요하신 벗님들은...

말씀하시면 보여드립니당..ㅎㅎ



숙소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둥근테안..ㅎㅎ

이런 아침시간...

타지마할과..찐한 눈인사와 짜이 한잔...


그렇게 멍때릴때..

이곳으로 여행온..스리랑카 가족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정보도 주시고..

고맙게 스리랑카의 정보도 얻었습니다.

이글을 빌려 감사드립니다.



다정한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웃음이 이뻤던 사람들...


타지마할 

입장시

가장 인생사진 많이 담는 위치..ㅋㅋ


이곳을 통과해서...

드디어..

사연많고..

느낌 있고...

여행의 끝판왕!!!

관광지!!!

이곳에 뿌나 서다..아~흣!!!!

구름이 있다 없다..

날씨가..좋았는데...

미세먼지가..ㅎㅎㅎ

눈속 가득히...타지마할 도 담아보고..

할 수 있는 것..다 해보는 시간...

2만명의 전문아트와 

22년간의 대공사...

샤자한의 맘은 어땟을까!?


첫사진을 클릭하시면..

뿌나가 느껴본 타지마할의 글이 있습니다.!!!

한참을 멍때려도...

좋았던..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

언젠가 또..우리의 아이가..이곳을 방문했을 때..

어떤 맘일찌...

사뭇 궁금합니다.

벽, 조각, 색감 하나 하나가..다~ 의미가 있게 와닫는 순간들...



웅장하지 않습니까!?

멋도 있고...

사연도 있고...

외벽의 색감이 먼지로 덮혀서..

다시 깨끗하게 해서 그런가...

색감이 더~더욱 맑아보였네요...

뿌나가 미술 공부를 못했지만..

선과 면..

음과 양..

쉽사리..느껴지지 안았습니다.

타지마할(힌디어ताज महल우르두어تاج محل)은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1632년에 무덤 건축을 명하여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건축의 총 책임자는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로 알려져 있고, 뭄타즈 마할이 죽은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에 22년이 걸렸다.

타지마할은 총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의 중심 부분이며, 실제로 무덤군은 응접실, 모스크 등이 따로 딸려있다. 무덤의 건설은 거의 대부분 1643년에 완료되었으나, 추가적인 보조 작업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어 1653년에야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건설하는 데에는 당시 가치로 3천 2백만 루피아, 현재의 가치로는 8억 2천 7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지마할 건설 당시, 황제 직속 건축가인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하우리의 감독 아래 20,000여 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터키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흰색 대리석 의 영묘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타지마할의 규모는 더 크다. 네 귀퉁이의 높이 40미터의 미나레트는 수직으로 보이나 붕괴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샤 자한이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설화가 내려오지만, 거의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를 그저 허구적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2007년 7월 7일 신(新) 세계 7대 기적에 선정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타지마할의 한 첨탑이 점점 기울고 있다는 것을 BBC방송에서 발견하였다. 인도의 아그라 야무나 강(Yamuna River Agra)에 타지마할이 세워졌는데 그 기초를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흑단나무로 했는데 아그라 야무나 강(Yamuna River Agra)이 완전히 마르면서 지난 30년 동안 3.5cm가 기울었다고 보도했다.네요...제가 갔을 때 공사를 하고 있두만요...

타지마할의 건축은 주로 페르시아 양식과 초기 무굴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티무르 제국 시대의 건축 양식을 담습한 것인데, 특히 사마르칸트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인 구-에 아미르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평을 듣는다. 본디 초기 무굴 양식의 건물들은 주로 붉은 빛 사암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완전히 순백색의 대리석과 보석들만을 이용해서 만들 것을 지시하였고, 이러한 샤 자한의 독특한 취향 때문에, 무굴 제국의 건축물들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새로운 방향으로 크게 발전하게 된다.

타지마할의 외부 장식에는 무굴 제국의 예술적 요소들이 총망라하며 집약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장식들은 치장용 벽토, 물감, 석조 장식,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형상을 그리는 것을 엄금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타지마할의 장식들은 거의 이슬람 서예(캘리그라피), 식물들의 모습, 혹은 추상적인 형태의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타지마할에 쓰여 있는 거의 대부분의 서예 장식들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의 구절들을 아랍어로 아름답게 써 놓은 것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도의 예술가였던 아마나트 칸이 직접 어떠한 문구들이 들어갈지를 골랐다고 한다.

타지마할의 대문 위에 쓰여 있는 구절은 "오 영혼이여, 예술을 통해 평안을 얻으라, 주님께 돌아가 안식을 얻으라, 그리고 그분과 함께 평화를 얻으리라"라는 뜻이다. 이 장식물은 1609년에 압둘 하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서예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감탄한 샤 자한이 그에게 직접 '아마나트 칸'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내부 돔의 기단부 부분에는 "이 것을 만든 공허한 자, 아마나트 칸 시라즈"라고 적혀있다. 거의 대부분의 캘리그라피 작품들은 백색 대리석들을 파낸 후에 그 홈에 벽옥이나 검은 대리석을 하나하나 채워넣어 만들어진 것이다. 글씨체는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미묘하게 더 커지는데, 이는 아래쪽에서 올려다볼 때 글씨가 안보이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타지마할 내부의 관에 새겨져 있는 캘리그라피는 그 유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캘리그라피들 중에서도 단연 백미(白眉)라고 여겨진다.

추상적인 장식들은 주로 타지마할의 미나레트, 복도, 모스크, 그리고 무덤의 표면 등에 사용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타지마할의 정문 등과 같은 부속 건물들의 겉면은 매끈한 기하하적 형태를 잡아내기 위해 암석들을 반질반질하게 광을 내어 만들어졌다. 거의 대부분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사암 건물들에는 주로 백색을 사용하여 장식을 하였고, 백색 대리석 바탕의 건물들은 어둡거나 검은색 계통의 장식들을 주로 하였다. 조각을 할 수 없는 부분들은 색조가 선명한 색들을 주로 사용하여 색칠, 혹은 치장을 하여 기하학적,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바닥과 복도 등은 서로 색조가 대비되는 타일들과 모자이크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무늬들을 만들어내었다.

무덤의 하부 벽에는 백색 대리석으로 만든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주로 꽃과 덩굴들을 묘사한 것들이다. 부조의 입체감을 부각하기 위하여, 모든 대리석 장식들은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고, 특히 벽들과 아치 상부에는 극히 정교한 덩굴무늬, 꽃무늬, 과일 무늬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장식들은 주로 백색 대리석을 파낸 후, 그 홈에다 황색 대리석, 벽옥, 옥 등을 채워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타지마할의 내부 장식은 전통적인 무굴 양식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거의 대부분 돌을 이용하여 장식을 한 외부 장식들과는 달리, 내부의 장식은 거의 보석들과 준보석들로 채워져 있다. 타지마할 본관 내부는 8면에 모두 출입구가 뚫려있는 팔각형 모양이지만, 현재는 정원을 면하고 있는 남쪽 문만이 사용 가능하다. 내부는 25m 높이의 천장을 가지고 있으며, 천장에 또다른 돔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참고로 이 내부 돔은 태양을 모티브로 하여 장식되어 있다. 내부에 있는 총 8개의 아치가 1층에 자리하고 있고, 외부에서 볼 때 이 아치들은 2층의 아치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이다. 이 2층 아치들은 주로 본관의 발코니들을 형성하고 있고 특히 이 발코니는 대리석을 지극히 정교하게 깎아 만든 창문들을 가지고 있어 그 예술적 가치가 상당하다. 이 창문은 8개의 얇은 대리석 판들을 파내 서로 합쳐 만든 것이다. 참고로 이 발코니와 천장에서 태양빛이 들어와 무덤 내부를 밝게 비추는 것이다. 타지마할 내부의 방들은 모두 세밀한 부조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덩굴 모양과 꽃무늬들이 보석으로 정밀하게 세공되어 치장되어 있다.

이슬람 전통에는 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엄금하는 풍토가 있다. 이 전통에 따라,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관은 오히려 타지마할 자체보다도 단순한 형태의 장식을 갖고 있다. 그들의 시체는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려진 채로 관 속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그 쪽이 이슬람의 성소인 메카를 바라보는 쪽이기 때문이다. 뭄타즈 마할의 관은 가로 1.5m, 세로 2.5m의 대리석 받침대 위에 올라가 있으며 타지마할의 정확한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받침대와 관 모두 보석과 준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받침대에 있는 캘리그라피는 뭄타즈 마할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그녀를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의 관의 서쪽 옆에는 샤 자한의 관이 있는데, 이 관은 타지마할 전체에서 유일하게 대칭 구조를 띠지 않는 구조물이다. 이는 샤 자한이 이 무덤을 지을 때 자신이 그녀의 옆에 묻힐 것을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샤 자한의 관은 뭄타즈 마할의 관보다도 더 크고, 더 높은 받침대 위에 올라가 있다. 다만 샤 자한의 관도 장식되어 있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는 뭄타즈 마할의 관과 거의 유사하다.

영묘는 타지마할의 중심에 서있는 거대한 백색 대리석 건물로써, 사각형의 대리석 토대 위에 지어져 있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게 설계되어 있으며, 아이완(전통적인 페르시아 양식의 아치형 입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위에 거대한 돔이 덮여 있다. 다른 무굴 제국의 건물들과 같이, 타지마할의 기본적인 구조는 페르시아 양식을 본따 지은 것이다.

영묘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사각 기둥의 구조로, 그 안에 많은 방들이 자리해 있다. 건물 한 면의 길이는 약 55m이다. 건물의 4면은 모두 거대한 아이완을 1개씩 가지고 있으며, 그 옆에 2층의 발코니들이 아이완과 유사한 구조로 지어져 있다. 아이완들과 발코니들은 모두 어디에서나 바라보건 간에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룰 수 있도록 지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타지마할은 완벽한 조형미와 대칭미를 자랑한다. 또한 무덤 본 건물 옆에는 총 4개의 미나레트들이 지어져 있다. 본관 안에 있는, 즉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관은 가짜 무덤으로, 진짜 무덤은 그보다 더 아래층에 자리하고 있다.

타지마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 요소는 바로 그 돔이다. 이 돔은 거의 35m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7m 높이의 원통형의 기초대 위에 세워져 있기에 더더욱 높아 보이는 효과를 지닌다. 중간이 볼록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유선형으로 휘어지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에, 이 돔은 종종 '양파 돔', 혹은 '구아바 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돔 꼭대기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어 그 모습을 더더욱 유려하게 보이는 효과를 낸다. 1개의 주 돔 주위에는 4개의 보조 돔이 세워져 있는데, 이 돔들도 모두 주 돔과 같이 똑같은 양파형 돔 모습을 띠고 있다. 4개의 보조 돔은 기둥들로 인해 받쳐지고 있는데, 보조 돔 아래의 바닥이 뚫려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빛이 이 기둥들 사이를 통과하여 타지마할 내부로 비출 수 있게 하였다. 돔 맨 꼭대기에는 힌두 양식과 페르시아 양식이 혼합된 길쭉한 첨탑이 자리해 있다.

원래 주 돔의 첨탑은 순금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19세기 들어 이 첨탑이 청동으로 교체되었다. 첨탑의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휘어진 초승달이 위치해 있다.

주위 4개의 미나레트들은 각각 40m의 높이이며, 이 또한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미나레트들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 곳에서 이슬람교의 무에진들이 소리로 무슬림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각각의 미나레트들은 2개의 발코니로 인해 총 3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3개의 층들은 미나레트를 모두 정확하게 삼등분하고 있다. 미나레트의 꼭대기에는 무덤 본관에 있는 것과 유사한 차트리(인도의 전통 건축 양식)가 위에 올라가 있다. 미나레트들은 모두 정확하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맨 위에는 연꽃 무늬와 함께 초승달 모양의 구리 장식물이 장식되어 있다. 참고로 미나레트들은 모두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미나레트가 혹시 무너질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미나레트가 무너질 때 무덤 쪽으로 무너져 무덤 본관마저 파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지마할에서 만났던...인도분..

함께 담아봅니다.

좋은 여행 추억 만들어주셨서 감사드립니다.^^;;;


타지마할은 아그라 성벽 도시의 남부 지역에 세워졌다. 당시 타지마할의 부지는 황제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샤 자한은 그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지의 원 소유자였던 마하라자 자이 싱에게 아그라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궁전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거의 1.2헥타르에 달하는 토지가 파헤쳐졌고, 원래 강가에 있던 부지의 단점을 메우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토사를 채워넣어 지반이 침하하는 것을 방지하였고, 이 작업으로 인해 강둑에서 약 50m정도 더 높이를 높게 하였다. 영묘가 세워질 자리에는 우물을 판 다음, 그 자리에 자갈과 흙들을 채워넣어 건물들의 기반을 닦았다. 보통 당시에 건물을 건설할 때 깎은 대나무와 같은 재료로 건물의 공사 지지대를 세웠던 것과는 달리, 타지마할을 건설할 때에는 단단한 벽돌로 인부들이 오고다닐 공사 지지대를 세웠다. 이 때 워낙 이 지지대를 단단히 쌓은지라, 사람들은 이 골조를 해체하는 것만으로도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타지마할에 쓰여진 재료들은 인도와 아시아 전역에서 수급되었는데, 거의 1,000여마리에 달하는 코끼리들이 이 재료들을 운송하는 데에 투입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 뿐만 아니라 22,000여 명의 인부들, 화가들, 보석 세공인, 석공들이 타지마할의 건설에 참여하였다. 타지마할을 이루는 반투명한 백색 대리석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마크라나에서 파내 왔고, 펀자브 주에서 벽옥을 채취해 왔으며, 중국에서 과 수정 등을 들여왔다. 한편 티베트에서는 터키옥이 들어왔고,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라피스 라즐리 등의 보석들을 가지고 왔다. 마지막으로 스리랑카에서는 사파이어를 수입했으며, 아라비아 반도에서 난 홍옥을 사용하였다. 결과적으로 28종류에 달하는 보석들과 준보석들이 백색 대리석을 꾸미는 데에 사용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샤 자한은 공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마음대로 지지대에 쓰였던 벽돌들을 가지고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고, 이 지지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농민들과 평민들에 의해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한다. 공사 과정에서 15km에 달하는 경사로가 대리석 바위들을 공사 현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만들어졌고, 20에서 30여마리의 황소들이 특별 제작된 수레에 돌을 싣고 이 경사로를 따라 돌을 운반하였다. 공사 과정에 필요한 물은 야무나 강에서 동물들을 이용한 펌프 장치로 끌어올린 후, 거대한 저장 용기에 저장된 다음, 3개에 달하는 정화조를 거쳐 공사 현장으로 공급되었다.

영묘 본 건물과 타지마할은 약 12년에 걸쳐 모두 완공되었다. 다만 미나레트, 모스크, 응접실과 같은 부속 건물들의 건설은 약 10여년이 추가적으로 더 걸렸다. 이처럼 한 건물군 안에서도 완공된 시기가 각각 다르기에, 타지마할의 완공 시점을 정확히 언제로 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쟁이 있다. 영묘 자체의 건설은 1643년에 끝났으나, 보조 건물들의 완성은 10년 후에야 다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지마할을 짓는데에 총 얼마가 소요되었을 지에 대해서도 시대마다 약간씩 다른 추측 결과들이 나왔으나, 현재 고고학계는 당시 가격으로 약 3천2백만 루피, 현재 가치로는 약 5천2백8십억 루피(8조2천7백만 달러)가 쓰였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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