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에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닭의 목 부분에 해당되는 고개를 가진 마을이 있다.
이곳은 부여 고개란 곳인데...이곳 마을에 독립투사및 뛰어난 인재가 많이 났다고한다.
더 이상 인재나 독립투사가 나오지 못 하도록 고개에다 굴을 뚫었다.
닭과 상극인 지네와 같은 기차길을 놓고 굴을 뚫었다한다.
(이런 발상 자체가 참 대단한 일본입니다.)
닭실마을 주변 산야에는 쇠말뚝이 지금도 발견된다 한다....ㅠㅠ
안동 다음으로 급제자가 많았던 마을 허나...
쇠말뚝을 박아 그 이후로는 인재가 괴멸되었다 한다...ㅠㅠ
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싫어하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 사람은 다~ 안다....
젊은 친구들~~~~ 벗님들...!!!!
일본을 괜히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미워해도 정확하게 알고 미워해야한다. 그리고 알아야한다.
우리가 일본이란 나라에 해가 되거나 그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욕보인 역사가 있는가 !?
그런데 지금 그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언제까지..당하고만 살아야 하는 역사인가...
(뿌나 간만에 흥분한다..ㅠㅠ)
봉화군의 이름 붙혀진 닭실 마을...이곳에는 역사가 있다.
충재 권벌 선생이 직접 건립한 정자, 청암정
이곳에서 충재가 그을 읽었고,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한 당대의 학자들과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다.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이렇게 옛스러움을 지켜가고 있다..
눈덮힌 정자 청암정.
담벼락과 눈.....
충재 박물관에서 들어오는 쪽문.
쪽문이 참..고즈넉합니다..^^
충재박물관에서 들어오는 문 ^^;;;
청암정(靑巖亭)
종택 서쪽에서 들어오는 쪽문...^^;;;
정자 주변의 나무들...^^
이 석다리를 통해서 청암정으로간다.
넓은 거북바위 같은 곳에 丁 자형 건물이다. 6칸 으로 트인 마루 옆에 2칸짜리 마루방을 만들고 마루방 가로 퇴를 둘렀다. 건물을 빙둘러서 연못 척촉천을 두르고
연못 속에 작은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긴 창대석을 놓아 만든 튼튼한 돌다리가 독특한 멋을 자아낸다.
연못 바닥이 부변 논보다 높아서 물이 숩게 빠지기 때문에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물을 제일 먼저 청암정에 끌어 들인 후 논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한다.
알죠 ?? 청암정 ㅎㅎㅎ
겨울의 백미이다..고드름..^^
이번 봉화여행의 백미는 고드름(?)
ㅋㅋㅋ 뿌나다운 컨셉이라 생각하면서 웃는다..ㅎㅎㅎ
벗님들은 어케 생각하시는지..ㅎㅎㅎ
정자 청암정 바로 옆이 충재선생님의 박물관이 있다 ^^
다음에..ㅎㅎㅎㅎ
지금부터 정자 청암정에서 사방을 바라보니다...
누구랑 !! 뿌나랑...또 누구랑!!!
벗님들이랑..ㅎㅎㅎㅎ
종택 방향의 쪽문이 보입니다..^^;;;
쪽문에서 보는 청암정
청암정에서 보이는 총재 선생님 박물관 및 주변의 오래된 고목들...^^
척촉천(연못이름)과 눈들~
겨울의 흰눈이 아니라면...연못위로 나무가지가 뻗어있는 형국이다..
캬~~~ ^^;;
이것은 운치가 장난이 아닐 듯..ㅎㅎㅎ
바로 충재가 보인다...^^;;;
그리고 바루바닥이 보인다.
누대 옆의 마루방은 원래 온돌이었다한다.
고런데 어느 날 고승이 '거북이 등에 불을 때면 되겠느냐?' 고 충고를 해 마루방으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누대와 마루방 사이에는 두꺼운 종이를 양면에 바른 맹장지문을 들어 올리게 하여 마루를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한다.
옛 퇴계 이황, 번암 채제공, 미수 허목등 조선 중후기 명필들의 글씨로 새긴 현판이 여럿 걸려 있다.
이곳이 풍월주인이되는 그곳 아닌가하는 뿌나생각 ^^;;;;
그리고 청암정의 현판들을 본다..^^;;
뜻은 벗님들 몫...^^
뿌나는 이런 것을 보았다는..ㅎㅎㅎ
현판들입니다..
뿌나가 좋아라하는 정자의 형태..ㅎㅎㅎ
이곳이 가지고 있네요...왠지...테라스라는 느낌(?)
이국적인 느낌 ㅋㅋㅋㅋ
주변은 눈이 없었다면 향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가 돌려 심어 독립된 공간을 만들었다한다...
설에는 열심히 일하는 농부에대한 배려라하는데..
뿌나는가 볼때는...ㅠㅠ 다~변명인 듯..ㅋㅋㅋㅋ
정자에서 보는 고목..캬~~~ ^^;;;
운치짱..ㅎㅎㅎ
청암정에서 보는...주변 산하 ^^
앞에는 내천이 흐르고...뒤는 산이고...캬~~풍수지리의 명당이 이곳입니다..ㅎㅎㅎㅎ
멀리 종택들이 보인다.
주변의 경관을 보세요..이곳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요소입니다..ㅎㅎㅎ
건너..마을 입니다..내성천을 지나서..ㅎㅎㅎ
산과 눈..어느 것 하나...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눈....
멍때리기 ...또..하나..ㅋㅋㅋ 발견...ㅎㅎㅎㅎ
저기보이는 곳이...고개.....휴~~~~
연못의 나무가지....
청암정에서보는 지붕과 나무와 산....
종택 서쪽문이다 ^^ 이곳으로 들어오면. 바로 청암정이다.
뿌나는 우리내 담장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담장과 눈...그리고 길.....
하이얀 눈길을....혼자 걸어보는 뿌나의 발자꾹(연출입니당..ㅋㅋㅋ)
솟을 대문과 행랑채로 구성된 출입문 ^^
주변의 가로등이 이곳이 닭실마을임을 알게해주는 징표(?) ㅋㅋㅋㅋㅋ
가로등입니다..ㅎㅎㅎ
전문가의 식견을 빌자면
이곳은 종갓집 살림채 사랑채와 안개가 붙어있는 전형적인 경북 안동지역 'ㅁ'자형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합니다.
건물형태로는 구한말에 지은 건물로 본다네요...(옮긴말 ^^ 뿌나의 한계 )
삼남지역 4대 길지의 하나인 봉화 닭실마을 제일 안쪽에 위치한 안동권씨 입향조인 충재 권벌선생의 종갓집
배산임수의 풍수 지리를 잘 맞게 지어진 집이라합니다.
종갓집으로서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건물 자체로는 역사가 질지 않은 듯하여 문조하재로 지정도니 집은 아니라합니다.
귓전엔 글소리와...노래 가락이...풍월을 읖는다...아~~~흣 !!!
청암정
054 - 679 - 6114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31
여행팁 !!! 내성천이 흐르는 곳으로 돌아가면 석천계곡을 끼고 석천정사가 있다..
충재의 큰아들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지은 정다라한다.
권벌이 동문 밖에 쌓았다는 대위에 지은 건물이다.
정자라고 하지만 전체가 34칸의 큰 건물로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정사(精舍)'라는 이름을 붙인 듯하다
내성천에 끼고 있는 청하동천이란 충재의 5세손인 권두웅의 글씨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중에 하나이다.
'신선이 사는 마을' 이라는뎅...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명승 제 60호로 지정되었다.
-자연여행님의 글에서 발취-
충재 권벌 선생님.
조선 중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중종조 조광조(趙光祖)·김정국(金正國) 등 기호사림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개혁 정치에 안동 사림파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사림의 도학정치를 주장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훤정(萱亭)·송정(松亭). 아버지는 성균생원 권사빈(權士彬), 어머니는 주부 윤당(尹塘)의 딸, 처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직장(直長) 최세연(崔世演)의 딸이다. 아들로 권동보(權東輔)와 권동미(權東美)가 있다.
권벌은 안동부(安東府) 춘양현(春陽縣) 유곡리(酉谷里,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태어났다. 1496년(연산군 2) 진사에 합격하고,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1513년 사헌부지평으로 재임할 때, 당시 신윤무(辛允武)·박영문(朴永文)의 역모를 알고도 즉시 알리지 않은 정막개(鄭莫介)의 당상관계(堂上官階)를 삭탈하도록 청하여 직신(直臣)으로 이름을 떨쳤다.
1514년 이조정랑에 임명되었고, 그 뒤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외직으로 영천군수에 임명되었다. 1519년 예조참판이었을 때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이 왕도정치를 극렬히 주장하자 기호 지역 사림파와 연결되어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를 조정하려고 하였다. 이후 아버지가 연로하고 병이 있음을 들어 삼척부사를 자청하여 나갔다. 1519년 11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파직당하고 귀향하였다.
1520년 43세 때 안동부(安東府) 내성면(乃城縣) 유곡(酉谷)에 은거하였다. 이후 1533년 복직되어 용양위부호군에 임명되었다. 밀양부사를 거쳐 1537년 12월 한성부좌윤이 되었고 이듬해 2월 경상도관찰사, 10월에는 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539년 3월에 병조참판에 임용되고, 6월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7월 종계변무(宗系辨誣)에 관한 일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동지사 임권(任權)과 함께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
1545년(인종 1) 5월 의정부우찬성이 되었고 7월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원상(院相)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 허자(許磁), 임백령(林百齡) 등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 세력이 대윤(大尹) 윤임(尹任) 세력을 배척하자 이에 반대하여 윤임, 유인숙(柳仁淑), 유관(柳灌) 등을 적극 구하는 계사(啓辭)를 올리기도 하였다. 곧이어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되고 길원군(吉原君)에 봉해졌으나 9월 우의정 이기, 우찬성 정순붕 등이 자기들과 논의가 다르다고 반대하여 삭훈되었고 10월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처음 구례로 유배지가 결정되었으나 곧 태천(泰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삭주(朔州)에 이배되어 이듬해 유배지에서 죽었다. 1567년(명종 22) 신원되었다. 권벌은 조정에 있는 동안 경연시독관·참찬관 등으로 왕에게 경전을 강론하기도 했으며, 평소 독서를 좋아해 『자경편(自警篇)』과 『근사록(近思錄)』을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
문집으로 『충재집(冲齋集)』 9권 5책이 있다. 문집의 권3 『한원일기(翰院日記)』는 예문관검열·예문관대교 등 사관으로 있던 1507년(중종 2) 12월 1일부터 1508년 12월 26일까지의 기록이며, 권4·5 『당후일기(堂后日記)』는 승정원주서로 있을 때의 기록이며, 권6 『승선일기(承宣日記)』는 승지로 있던 1518년 5월 15일부터 11월 6일까지의 기록이다. 세 일기의 합칭인 『충재일기(冲齋日記)』는 조정에서 일어난 제반 사항이 거의 매일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사료로서 『미암일기(眉岩日記)』, 『석담일기(石潭日記)』, 『덕계일기(德溪日記)』 등과 함께 당시 조정의 실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중마을(내유곡) 큰재궁골에 있다.
1568년(명종 23)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1588년(선조 21) 삼계서원(三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1591년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의 종계(宗系)가 바로잡혀 속찬(續纂)되자 나라를 빛낸 공으로 영의정에 추증되고 광국원종1등공신에 녹훈되어 불천위(不遷位)로 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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