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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북여행

[봉화여행]이몽룡이랑 성춘향이랑 사랑이야기 알지~ 러브스토리 진짤까, 가짤까 !? 가평리 계서당이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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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룡랑 성춘향이랑 사랑이야기 알지~ 러브스토리 진짤까, 가짤까 !?  

가평리 계서당(佳坪里溪西堂)-이얌 ^^

 

벗님들 아시죠??

암행어사 출또야~~하는 우리의 고전 성춘향전~^^

지고지순한 일부종사하는 아름다웠던 이야기~

 

뿌나가 봉화여행에서 미소짓으며...돌아댕긴 곳..

뿌나 사랑빼면 시체입니당..ㅋㅋㅋㅋ

(모라하는 징 !!! 좋컷다...~~ 사랑 알아서..ㅋ)

 

오늘 벗님들께 가평리계서당(佳坪里溪西堂)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붐바 붐빠~ 붐빠빠~~ ^^

 

 

 

마을 주차장에서 약 600 m 정도 걸어서 들어가면 ^^

이렇게 딱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가평리 계서당입니다..ㅎㅎ 눈이 아주...넘쳐 납니다.ㅎㅎㅎ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이번 봄부터 게스트 하우스(?) 숙박 시설을 만들어...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는..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그래서 집안의 짐들이 밖으로 나와 있서 미안하다고 하시네요...아공 !! 친절도 하셨랑..ㅎㅎ

역쉬...품이 넉넉한 분들은...유전(?)적으로 있나봅니다..옛날..성이성이란 분도...저렇게...넉넉한 사고의 소유자가 아닐까!? 합니다.ㅎㅎ 

 

담벽락 밑으로...아름다운 문양이 뿌나를 웃게 합니다.ㅎㅎ

보이지죠..우리의 건축미나 회화의 미는 이렇게 곳곳에 있답니다..

-뿌나생각-

 

 

벽의 문양을 보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처마가..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직손 되시는 분이...설명을 첨가해 주시네요..ㅎㅎ

 

처마밑으로 사각형같이 보이는 곳이..ㅋㅋ 화장실이랍니다...ㅎㅎㅎㅎ(진짜~)

구명이 뚫려있습니다. 밑에 요강(?)을 뒀다는뎅..ㅋ

그러면서 웃으시는뎅..ㅎㅎㅎ

 

 

아름다운 한옥과 눈의 어울림...참 아름다웠네요..ㅎㅎㅎ

이런곳에서 하룻밤 자면...기를 팎팎 받지 않을까요!? ㅎ

 

 

이 소나무는 춘향전의 주인공이 이몽룡의 실존 모델인 성이성 선생이 유년시절 함깨 보낸 나무로서 고댁의 은은함과 소나무의 청청함이 잘 어우러져 있다.

500년된 소나무입니다..^^;;;

 

뿌나의 시선을 온통 빼앗아 버린....처마밑의 고드름..

이번 여행의 컨셉이죠 ^^

처마와 고드름..봉화의 가평리 계서당에서 만난 고드름입니다..ㅎㅎ

 

 

담의 눈과 처마밑의 고드름...추운 겨울날의 모습입니다..

2013년 여름에 꼭 ~~ 이 고드름과 처마들을 소개할 겁니다..ㅎㅎ

아마..시원하겠다는 뿌나 혼자만의 생각에..

또..쪼게어(웃어) 봅니다.

완전이뻐

 

아~...참~!...

아름답고 신기하지 않습니까??

중력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이 만나..이쁜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ㅎㅎ

 

이래서...아름다운...우리내 삶

 

하나의 모습입니다..ㅎㅎ

 

뿌나는 이번 겨울에..원업이...고드름을 봅니다...눈두요...

이곳..창원도..2012년 12월과 2013년 1월은 눈이 많이 오고 춥습니다..

이글을 쓰는 중..온도계를 봅니다.헐 영하 9도입니다...

춥다..추워~~~ ㅠㅠ....

 

헐

 

벗님들 건강유의하세요..ㅎㅎㅎ ^^

 

간혹..한옥과 현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풍경...

열쇠와 문고리..ㅋㅋㅋㅋ

 

 

상상해보라..^^ 우리가 소설이라고 알던 성춘향전은 실제 인물이며...

그 이야기의 진원지가 바로 가평리 계서당이다...

 

역쉬~ 알라뷰

 

사랑은 참..결속력이 있다..그만큼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랑이니...

사랑이야기가..봉화의 이땅에서...울려퍼지는 중(?)

 

사랑하는 연인이라면..한번 쯤은 이곳의 기원을 받아봄도..좋은 테마여행이 되지 않을까 !? (망구) 뿌나생각...

 

그랬구나

 

마당 한켠의 호박들이...운치를 더해줍니다..ㅎㅎ

이곳은 가평리 계서당 마당입니다..ㅎㅎ

 

마당 한켠의 유명한 암행어사 출두야 !!!

하는 한시가 있다...^^

 

많은 부분이 비슷한뎅...일딴...고전에 나오는 한시와 함께 올려봅니다..^^;;;;

 

 

 

춘향전에 나오는 위의 시 내용.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姓高)라.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사랑해

 

그리고 여러가지 약재를 넣어서 만든 차(?)...맛을 보라고 내어주신...사모님께..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찌나...맘의 품이 넓어시공..고마웠는지..감사합니다...님 ^^;;;

제가 먹은 차 중에서 최고 ^^

 이글을 빌려 감사드립니다..ㅎㅎㅎ대박

 

가평리 계서당

 

054 - 679 - 6114

 

경북 봉화군 몰야면 가평리 301

 

 

 

 

 

봉화마스코트 ^^

 

솔봉이 솔향이


계서당 ^^ 한옥체험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 (?)

다음이 기대됩니다..ㅎㅎㅎ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가는 600m 정도의 왼쪽으로는 논이 있습니다..

하얀눈이 덮혀서뤼~~~ 장관이였네요..ㅎㅎㅎ

 

보이시죠 ^^ ㅎㅎㅎㅎ

기도 잘되어 있습니다..ㅎㅎㅎ

 

혹여 여름에 오시는 벗님들 비교하시라꼬..ㅎㅎㅎㅎ

올한해 눈구경..겪하게..했습니다..ㅎㅎㅎㅎ

 

이곳에서 찍었던 많은 자료가...ㅠㅠ...하드가 날아가는 바람에..이렇게 올려봅니다..ㅠㅠ...많은 이해를 바래봅니다..^^

남아 있는 것으로...소개해 봅니다..^^;;;

 

 

성이성

성이성(成以性, 1595년(선조 28년) ∼ 1664년(현종 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청백리이다. 자(字)는 여습(汝習)이고 호는 계서(溪西)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춘향전의 실제 주인공으로 춘향전의 주인공인 몽룡은 원래 성몽룡이었다. 남원부사승정원승지를 지낸 성안의의 아들이다.

강직한 간관이자 청백리였으며, 춘향전에 나온 '금준미주 천인혈'은 그가 실제로 지은 시조(詩調)였다. 호서 암행어사와 호남 암행어사로 활동, 감찰하며 부패 수령들을 봉고파직시켰다. 이것 역시 춘향전의 소재가 된다. 학맥으로는 김굉필의 손제자이자 그의 학맥을 계승한 강복성(康復誠)의 문인이다. 경상북도 출신.

 

 

가평리계서당(佳坪里溪西堂)-성이성(춘향전』이몽룡의 실제 모델)

경북 봉화군 봉화읍 소재지에서 물야 방면 915번 지방도로 약 6km를 가서 가평에 이른 뒤 다시 가평에서 두문·수식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약 500m 지점에 있다.
계서당(중요민속자료 제171호.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은 계서 성이성(1595∼1664)이 살던 곳으로 계서공파의 종가이다.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1595∼1664)은 창녕인(昌寧人)으로 남원부사(南原 府使)를 지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의 자제(子弟)이며 인조(仁祖) 5년(1627) 문과에 급제한 후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3차례나 어사로 등용되었을 정도로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훗날에 부제학(副提學)을 추서(追敍)받았다.
사랑채의 당호는 성이성의 호를 따서 계서당이라 붙였다. 그래서 종가 전체를 계서당이라고 통칭한다. 사랑채에는 측면 대청에 전백당(傳白堂)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데 계서의 청백함을 이어 온 집이라는 뜻이다.
계서당은 경사진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뒷산엔 큰 소나무들이 제법 빽빽하다. 집이 높은 곳에 위치한 탓에 밖에서 보면 우뚝 솟아 보인다. 정면에서 바라 볼 때 집 오른 쪽에 사당이 있는데, 사당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당 아래 화단도 있고 그 아래에는 밭도있다
사랑채는 이중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누마루식으로 올렸으므로 사랑 마당에서 눈을 높이 들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누마루 기둥 사이를 돌과 흙으로 쌓은 뒤에 다시 기와조각과 흙을 써서 채워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랑채의 툇마루 끝에 주인이 바깥에 나가지 않고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판자로 3면을 막고 바닥을 뚫었는데, 지금 항아리는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바닥 아래에 항아리를 놓아 간이화장실로 썼다.
계서당의 안채와 사랑채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채는 도장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사랑방은 대부분 홑집으로 구성하는데, 이 집은 겹집으로 만들어 안채의 날개집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안채부분은 약간 변형은 되었지만 경북 북부지방 ㅁ자 민가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택이다

▲『춘향전』이몽룡의 실제 모델
춘향전의 실제 모델이 성이성이라는 주장

설성경 교수 - 성이성 본인의 글을 후손이 편집해낸 『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 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의 내용을 기초
“도령의 본래 이름은 성이성이다. 그는 남원 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전라도 남원에 머무르는 동안 기생을 사귀었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 지역을 순행하다가 남원을 찾았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보려 했지만 사랑하던 그 기생은 죽고 없었다.”

①『계서선생일고』에 실려 있는 「호남암행록」의 한 대목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 길에 길을 나서서 십 리가 채 안 되어 남원 땅이었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눈을 부릅뜨고 (원천 부내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女眞)과 기생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 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성경은 “‘늙은 기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밤잠을 설쳐가며 소년 시절을 회상했다.’는 성이성의 진술은 비록 성이성이 직접 옛 연인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앞 뒤 정황으로 보아 틀림없이 옛 연인을 그리워한 대목이라고 판단된다.”라고 한다. 또 옛 연인은 기생이었음이 분명하고, 그 중에서도 관기(官妓)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옛 연인이 성이성과 이별한 뒤 연정을 지키려다가 관기 사회의 규제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②『필원산어』에 실려 있는 성이성의 암행어사 행적이다. 이 행적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 그대로 유입되었다. 성이성의 4대손인 성섭은 『필원산어』에서 자신의 고조 성이성이 남원 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 고조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암행하여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의 수령들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모양으로 음식을 청하니, 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하였다. 곧 한 장의 종이를 청하여 시를 써주었다.
‘금동이에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소반 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소리 또한 높더라.’
쓰기를 마치고 내놓으니, 여러 관리들이 돌려가며 보고는 의아해 할 즈음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외치며 달려 들어갔다. 여러 관리들은 일시에 모두 흩어졌다. 당일에 파출시킨 자가 여섯이나 되었다.”
이 시를 성이성 자신이 지었는지, 아니면 항간에 전해오던 시를 옮겨 적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성이성과 남원과의 관계가 춘향전의 모태가 된 것만은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부용당이 바로 성이성 아버지 성안의의 호인 것과 함께 말이다. -문화재지킴이 이은정님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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