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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남여행

[거제여행]빨간~노랑~단풍편지만 남기고 말없이 떠나간 가을이 생각함서 찾은 청마 유치환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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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

 

그의 문학! 삶이 숨쉬는 공간!

 

청마 생가

아담하고 포근한 초가집...초가 아래 마루가 있고..

넓게 펼쳐진 잔디.마당.

그리고 정겹고 따뜻한 장독대와 우물.. 정성들여 쌓아올린 돌담..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편안함과 따뜻함이 묻어난다.

 

관람시간

09:00 ~ 18:00

1월1일, 설날및 추석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월요일이 공유일 또는 연휴일 경우 연휴 다음날)

 

 

문의 전화

055 - 639 - 8340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5 - 1

 

 ※ 진해→고현:06:30,07:30,08:30,10:00,11:30,13:00,14:00,15:30,17:00,18:30,차비 6,900원,       용원사거리는 35분 후에 도착하며 차비 4,600원.

       고현→진해:18:00,09:30,10:30,12:00,13:30,15:00,16:00,17:30,19:00,20:00 (만약 막차를 놓치면 부산(신평역,사상터미널)가는 막차는 22:30이고 심야도 있다.)

 

  부산에서 고현은 20분마다 자주 있으니 시간표는 불필요,고현에서 부산은 막차 22:30이고 심야버스도 있다.

        

  거미줄처럼 엮어진 거제시의 시내버스 노선은 터미널이 있는 고현을 증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제시 버스정보시스템 http://bis.geoje.go.kr/main/main.do?action=webMain

 

    ※ 고현→옥동 09:05,10:05,11:05,13:05,16:05 하방삼거리 하차.

        옥동→고현 14:30,16:30,17:30,18:30,19:30

 

그냥..고무신일 뿐인데...왠지...외할아버지의 신발같은..느낌이....ㅜㅡ...

많은 기억은 없는 외할아버지 언제나 뿌나에게는 어려웠던..할아버지....할머니...

하늘나라에는 잘계시겠쬬??....

 

이제 말합니다..사랑합니다..외할아버지..할머니...^^;;;

 

들판엔 곡식이 익어 추수가 끝이나고..굴뚝에는 저녁노을과 함께..밥하는 연기가 올라가고..

어디서 많이 연출되는..ㅎㅎㅎㅎ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나봐요..ㅎㅎㅎ

 

 

 

 

 

 

 

현재..복원된 생가 미니어츠와 생각를 비교해보는..^^

느낌이 재미있습니다.

 

 

 

 

 

 

옥상에서 본 생가 ^^;;;

 

옥상에서 본 동상 ^^;;

 

 

 

청마 기념관 옥상 전망대에서 본 정자 ^^;;;

 

 

 

 

 

 

 

 

 

 

 

 

 

 

 

 

 

 

 

 

 

 

 

 

 

 

 

 

 

 

 

 

 

 

청마기념관 관장님 김화순님..^^ 해설고마웠습니다..^^;;;

 

 

 

 

청마님의  글을 포스팅하고 블방친구분인 빨강머리앤

 

 

누이땜시..한번 더 보게된 이영도님.... ^^;;;

 

정운 이영도 [李永道]한국 시조시인

 

한국 전래의 기다림을 고유의 가락에 실어 감각적으로 읊었다. 호는 정운(丁芸). 오빠 호우(鎬雨)도 유명한 시조시인이다. 일제강점기에 군수를 지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했다. 통영여자고등학교, 부산 남성여자고등학교, 마산 성지여자고등학교 등의 교사를 거쳐, 1970년 부산여자대학에서 강의했다. 1964년 부산어린이회관 관장이 되었고, 〈현대시학〉 편집위원을 지내면서 영남시조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45년 대구에서 펴내던 문예동인지 〈죽순 竹筍〉에 시 〈제야 除夜〉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54년 첫 시조집 〈청저집 靑苧集〉을 펴냈고, 1968년 오빠와 함께 2번째 시조집 〈석류〉를 펴냈다. 대표작 〈황혼에 서서〉는 종교적인 애정을 노래한 것이고, 그밖에 〈낙화〉(죽순, 1946. 8)·〈폭포〉(영남문학, 1948. 10)·〈나목 裸木〉(현대문학, 1967. 3) 등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 〈춘근집 春芹集〉(1958)·〈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머나먼 사념의 길목에서〉(1971) 등을 펴냈는데, 구도자적인 면과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면을 함께 보여주었다. 문학을 통한 사회봉사로 1966년 늘월문학상을 받았다. 1979년 이영도 여사 기념사업회에서 정운시조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브리태니커-

 

너무나 이영도님과 청마 유치환님의 연시표현을 잘해주셨서 가져왔습니다.

 

<이영도 , 그리고 정운(丁芸)과 청마(靑馬)의 연시(戀詩)>

 

          <낙화(落花)> -눈 내리는 군 묘지에서- 이영도

 

뜨겁게 목숨을 사르고  /  사모침은 돌로 섰네.

겨레와 더불어 푸르를  /  이 증언의 언덕 위에

감감히  /  하늘을 덮어  /  쌓이는 꽃잎,  /  꽃잎.

 

         <석류(石榴)> -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  못 여밀 가슴 속을

알알 익은 고독  /  기어이 터지는 추청(秋晴),

한 가락  /  가던 구름도  /  추녀 끝에 머문다. 

 

          <언약(言約)> - 이영도

 

해거름 등성이에 서면  /  애모(愛慕)는 낙락히 나부끼고

투명(透明)을 절(切)한 수천(水天)을  /  한 점 밝혀 뜬 언약(言約)

그 자락  /  감감한 산하(山河)여  /  귀뚜리 예지(叡智)를 간(磨)다.

 

         <그리움> - 정운(丁芸) 이영도

 

생각을 멀리하면  /  잊을 수도 있다는데 

고된 살음에  /  잊었는가 하다가도

가다가  /  월컥 한 가슴  /  밀고 드는 그리움. 

 

           <세월(歲月)> - 청마(靑馬) 유치환

 

끝내 올리 없는 올이를 기다려  /  여기 외따로이 열려 있는 하늘이 있어.

하냥 외로운 세월이기에 / 나무그늘 아롱대는 뜨락에 / 내려 앉는 참새 조찰히 그림자 빛나고.

자고 일고 - / 이렇게 아쉬이 삶을 이어 감은 / 목숨의 보람 여기 있지 아니함이거니.

먼 산에 우기(雨氣) 짙으량이면 / 자옥 기어 드는 안개 되창을 넘어

나의 글줄 행결 고독에 근심 배이고 -

끝내 올리 없는 올이를 기다려  /  외따로이 열고 사는 세월이 있어.

 

           <아지랑이> - 이영도

 

어루만지듯  /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  나비 나비 나비 나비

 

           <바람에게> - 유치환

 

바람아 나는 알겠다.  /  네 말을 나는 알겠다.

한사코 풀잎을 흔들고 / 또 나의 얼굴을 스쳐 가 / 하늘 끝에 우는 / 네 말을 나는 알겠다.

눈 감고 이렇게 등성이에 누우면  /  나의 영혼의 깊은데까지 닿는 너.

이 호호(浩浩)한 천지를 배경하고 / 나의 모나.리자! / 어디에 어찌 안아 볼 길 없는 너.

바람아 나는 알겠다. / 한오리 풀잎마다 부여잡고 흐느끼는 / 네 말을 나는 정녕 알겠다.

 

               <비> - 이영도

 

그대 그리움이  /  고요히 젖는 이밤

한결 외로움도  /  보배냥 오붓하고

실실이  /  푸는 그 사연  /  장지 밖에 듣는다. 

 

              <밤바람> - 유치환

 

너의 편지에  /  창밖의 저 바람소리마저  /  함께 봉하여 보낸다던 그 바람소리

잠결에도 외로와 깨어 이 한밤을 듣는다.

알수 없는 먼 먼데서 한사코  /  적막한 부르짖음 하고 달려와

또 어디론지 만리(萬里)나 날 이끌고 가는  /  고독한 저 소리!

너 또한 잠 못이루 대로 아득히 생각  /  이 한밤을 꼬박이 뜨고 밝히는가?

그리움을 모르는 이에겐  /  저 하늘의 푸름인들 무슨 뜻이리.

진정 밤 외로운 바람은  /  너와 나만을 위하여 있는 것.

아아 또 적막한 부르짖음 하고 저렇게  /  내게로 달려 오는 정녕 네 소리!

 

           <탑(塔) 3> - 이영도 

 

너는 저만치 가고  /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  사리(舍利)로 맺쳐  /  푸른 도로 굳어라.

 

          <기다림> - 유치환

 

무척이나 무척이나 기다렸네라.  /  기다리다 기다리다 갔네라.

날에 날마다 속여 울던 뱃고동이  /  그제사 아니우는 빈 창머리

책상 위엔 쓰던 펜대도 종이도 그대로  /  눈 익은 검정 모자도 벽에 걸어 둔대로.

두번 다시 못올 길이었으매  /  홀홀히 어느 때고 떠나야 할 길이었으매

미래(未來) 없는 억만(億萬) 시간(時間)을  /  시간마다 기다리고 기다렸네라.

흐림 없는 그리움에 닦이고 닦이었기  /  하늘에 구름빨도 비취는대로

이름 없는 등성이에  /  백골(白骨)은 울어도.  

그때사는 정녕  /  너는 아니 와도 좋으네라.  

 

          <황혼에 서서> - 이영도   

 

산이여, 목메인듯  /  지긋이 숨 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  아픈 견딤이라. 

너는 가고  /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  저무는데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 유치환  

 

마침내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무량한 안식을 거느린 저녁의 손길이  /  집도 새도 나무도 마음도 온갖 것을  

소리 없이 포근히 껴안으며 껴안기며 -  

그리하여 그지없이 안온한 상냥스럼 위에  /  아슬한 각달이 거리 위에 내걸리고  

등들이 오르고  /  교회당 종이 소리를 흩뿌리고. 

그립고 애달픔에 꾸겨진 혼 하나  /  이제 어디메에 숨 지우고 있어도.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  귀를 막고 -  

그리고 외로운 사람은   /  또한 그렇게 죽어 가더니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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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시인 정운 이영도는 같은 시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이고 유치환의 애잔한 시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로 시작되는 [행복] 이라는 시의 주인공이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의 '파
도' 시도 청마의 정운(파도)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다.  이영도는 청마 유치환이가 20년을 두고 사랑한 여인인데 청마
가 교통사고로 죽고 난 뒤에 발표한 시조이다. 이호우의 시조 '균열' 차라리 절망을 배워 바위 앞에 섰습니다./무수한
주름살 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바위도 세월이 아픈가 또 하나 금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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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님의 사랑편지 그리고 정운 이영도님의 시조

 

청마!!
그를 말할때면 사람들은 항상 이영도라는 사람을 항상 말하고는 한다.  황폐하지 않은, 불모의 사랑이 아닌, 소중
하고도 행복한 사랑, 즉 주는 사랑을 20여년간 한 사랑...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황혼에 서서
- 이 영도

 

 
산(山)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沈默)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입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情)

 

동하님 글에서 가져옮 고맙습니다 내리라면 내릴께요...^^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장에 피서되었으며

'경주여중고, 경주고, 경남여고 교장을 거쳐 1967년 부산남여상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한국문단의 거목이다.

 

담벼락으로 가을이가 말없이 가고 있었습니다.

 

 

청마 생가

아담하고 포근한 초가집...초가 아래 마루가 있고..

넓게 펼쳐진 잔디.마당.

그리고 정겹고 따뜻한 장독대와 우물.. 정성들여 쌓아올린 돌담..

하나하나 모든 것들이 편안함과 따뜻함이 묻어난다.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 - 5 청마의 출생지로서 대지면적 645㎡ 에 연면적 64.43㎡ 로 2000년 5월에 복원되었다.

생가는 두채의 초가로 싸리대문, 텃밭과 우물 등 청마가 태어난 1908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청마기념관 홈페이지

http://cheongma.or.kr/

 

 

[거제여행]해방직후 생명파시인 청마 유치환선생님 생가를 가다....아!! 뿌나가 좋아했던 분.....

http://blog.daum.net/munandcom/17435393

 

 

아버지 준수(焌秀)의 8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극작가 치진(致眞)은 그의 형이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 중학[豊山中學]에 입학했다. 이때 형이 펴낸 동인지 〈토성〉에 시를 발표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한의원을 경영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26년 귀국,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해 졸업했다. 이어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했으며, 사진관을 경영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된 뒤 교육계에 종사했다. 1937년 문예동인지 〈생리 生理〉를 주재했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펴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옌서우 현[煙首縣]에 가서 농장관리인으로 일하다가 8·15해방 직전에 귀국하여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6·25전쟁 때는 문총구국대 일원으로 참여했다. 해방 직후 생명에의 열애를 노래한 점에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렸다. 1954년 경상남도 안의중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어 한국시인협회 초대 회장을 비롯해 경주고등학교·경주여자중학교·대구여자고등학교·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1967년 교통사고로 죽었으며 묘지는 부산광역시 서구 하단동에 있고,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 공원, 통영 남망공원 등에 시비가 세워졌다.

 

1931년 〈문예월간〉 12월호에 〈정적 靜寂〉을 발표해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 35년 동안 14권에 이르는 시집과 수상록을 펴냈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허무와 애수이며, 이 허무와 애수는 단순히 감상적이지 않고 이념과 의지를 내포한다. 특히 대표시 〈깃발〉(조선문단, 1936. 1)은 연민과 애수를 통해 존재론적 차원의 허무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깃발'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의 상징이다. 또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되는 〈행복〉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절망의 애수를 보여주었고, 이러한 시세계는 첫 시집 〈청마시초〉(1939)와 제2시집 〈생명의 서〉(1947)에 잘 나타나 있다. 〈청마시초〉에 나타난 허무는 정신편력과 더불어 다양하게 변모하는데 이것은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여기서의 죽음의 의미는 2가지로 나뉜다. 첫째, 일제 말기의 극한상황과 결부되어 자학적 분노와 생명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이는 결국 종교적 자아로 승화되고, 둘째, 인간의 숙명인 죽음이 역설적으로 인간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수로 나타난다. 이는 제6시집 〈보병과 더불어〉(1951)에 실린 종군시(從軍詩)들에 이어져 전장에서 애수에 젖기도 한다. 한편 제2시집 〈생명의 서〉에 실린 시는 만주에서 쓴 것이 대부분이며, 여기에 실린 〈생명의 서〉와 〈일월〉에서는 허무와 고독을 극복한 강인하고 웅건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후에 대표시 〈바위〉로 이어져 순수한 본질적 자아로 복귀하려는 의지로 나타났다. 그는 후기에 와서 허무에 회의를 느껴 이를 극복한 다른 시세계를 보여주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죽음으로써 이루지 못했다. 시인 스스로 "윤리를 갖지 않은 글, 윤리의 정신에서 생산되지 않은 문학은 무엇보다 첫째 그것을 읽어 줄 독자가 없을 것"이라 했듯이 현대시사에서 보기 드문 도덕적인 시인으로 평가된다.

시집으로는 〈울릉도〉(1947)·〈예루살렘의 닭〉(1953)·〈청마시집〉(1954)·〈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미류나무와 남풍〉(1964) 등이 있다. 1950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58년 자유문학상, 196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부산시 문화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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