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경남여행

창녕여행/물계서원勿溪書院 - 잠겨있었서..둘레만 보다온...1712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곳...

728x90
SMALL

2018년 창녕군의 궁금증 유발로..

두발로 찬찬히~

찾아나선 물계서원

그곳에서는...

뿌리가 있다.

뿌나가 좋아하는 뿌리...

이 후로도 몇번갔는데...

물은 여전히...잠겨있었다는..것...

잠겨있었서..둘레만 보다온...1712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곳...

창녕여행/물계서원勿溪書院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에 있었던 서원. 1712년(숙종 3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성송국, 성삼문, 성담수, 성수침, 성운, 성제원, 성혼, 성윤해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지난 시간에 갔다가...쪼매 아쉬워서..

내부 구경도 하고 싶었는데...

잠겨 있었서..ㅜㅡ...

 

 

 

 

1712년(숙종 3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성송국(成松國)·성삼문(成三問)·성담수(成聃壽)·성수침(成守琛)·성운(成運)·성제원(成悌元)·성혼(成渾)·성윤해(成允諧)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성여환(成汝完)·성희(成熺)·성수경(成守慶)·성문준(成文濬)·성람(成灠)·성여신(成汝信) 등을 추가 배향하고 1814년(순조 14)성안의(成安義), 1857년(철종 8)성준득(成準得)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95년에 복원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잠겨있었서...섭섭했던...대문....

게~ 아무도 없느냐~~~!!!아무도 답이 없다....ㅋ

 

 

 

봄이 오기 전이다보니..ㅜㅡ...

쪼매 을시년하기는 하죠...^^

 

 

 

여름에 한번 찾아보고 싶은 곳...

그리고 몇번 방문했는데...

뿌나는 안은 보지 못한 것은 늘~ 아쉽다...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

 

 

좌축 우측..마구..담아봄...

여름날에...꼭..보고픈 맘이...ㅎㅎ 그때보장..물계서원!!!

 

 

 

 

깨알같이 틈사이로..ㅋㅋ

 

 

계절적 느낌인지...벗님들도 보시기에!? ㅎㅎ

나름..좋았습니다...ㅎ

 

 

 

조금이라도 보고픈 맘에..뒷산에서..담아본..물계서원...

 

 

 

 

 

물계서원勿溪書院

 

055-533-8244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80

주차장 대빵 넓어요..ㅎㅎ

 


 

 

다음이 이제...지도도..닫을려는 가!?....안나옴....

 

벗님들!

간혹

한번씩...서원의 역사와 과거를 보다보면...

우리가 보인다는 것!!!

 

 

물계서원(勿溪書院) 간략 소개-창녕성씨 종중 관리의 물계서원은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504번지에 소재하며, 역사에 빛나는 창녕성씨 훌륭한 여러 조상을 서원에 모셔서 제사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창녕군 대지면 왕산에 창효사(彰孝祠)로 건립되어 효행으로 드러난 시중공(侍中公) 성송국(成松國)선생을 향사(享祠)하여 온 것이 물계서원(勿溪書院)의 효시(嚆矢)이다. 이후 숙종 38년(1712)에 사당을 맥산의 북쪽 물계 위에 건축하였으며 영조 5년(1729)에 많은 선비들이 건의하여 사당(祠堂)을 서원(書院)으로 만든 다음 물계서원(勿溪書院)이라 호칭하였다. 시중선생(侍中先生)을 최상석으로 모시고 있는 이곳은 1989년 11월 기공하여 1995년 5월 복원되었다. 복원된 부지는 4,776평이고 경내 면적은 1,751평이다. 처음에는 시중공을 주향(主享)으로 7선생을 배향(配享) 하였으나 추배(追配)하여 19선생을 모시게 되었으며 근자 1997년에 독곡공과 가정공을 모시게 되어 21선생이 되었다.
이 서원은 시중공을 주향으로 모시고 매죽당(梅竹堂:성삼문) 선생을 비롯한 7선생이 배향되었으나 그 후 여러 번의 추향(追享)으로 모두 21선생이 배향되었는데 이 서원도 다른 서원과 같이 대원군(大院君)에 의해 1866년(고종 3)에 철훼되었다.
이 서원 자리에는 원정비(院庭碑)가 비각 속에 지금도 남아있는데 비의 비문은 판부사 이복원이 지었고 동지중추 조윤형이 썼으며 1790년(정조 14)에 세웠다. 공은 또 경북 영천군 화북면 대천동에 있는 대천사(大川祠)에도 제향되었다.

 

5. 참고2:성시중 효행록(成侍中 孝行錄)-공의 천리부시(千里負屍) 효행을 기리기 위해 공의 14대손 유촌공(柳村公) 환(瑍)이 1732년(영조 8)에 발간하였으며, 그 후 공의 후손 인호(麟鎬)가 1900년(고종 37)에 중보 재간 하였고 이 재간본은 4권 1책 142면이며 내용을 보면 천리부시한 사실과 10효도(孝圖)가 있고 각 효도마다 찬(讚)과 시(詩)가 있으며 물계서원에 제향된 선생들의 행장(行狀)과 축문 기타 서원 관계 여러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그날 따라...약간 거시기했던...옆 담벼락길...

아쉬움이 가득했다능...

 

서원 개요(書院槪要)
경남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504번지에 물계서원(勿溪書院)이라는 유명 서원이 있다. 이 서원(書院)은 창녕성씨(昌寧成氏) 시조(始祖) 휘(諱) 인보(仁輔)의 아들 휘 송국(松國)을 비롯하여 충절(忠節)을 지킨 성씨문중(成氏門中) 21 선생을 봉안(奉安) 제향(祭享)하는 곳이다.
1710년(肅宗 26) 유촌공(柳村公) 휘(諱) 환(瑍)의 발의(發議)로 1712년(肅宗38)에 맥산(麥山) 북쪽 물계(勿溪) 위쪽에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侍中) 諱 송국(松國)을 봉향(奉享)하는 창효사(彰孝祠)로 현판(懸板)하였다가 1719년(肅宗45) 세덕사(世德祠)로 개칭(改稱)하고 매죽당(梅竹堂) 휘 삼문(三問), 문두(文斗) 휘 담수(聃壽), 청송(聽松) 휘 수침(守琛), 대곡(大谷) 휘 운(運), 동주(東洲) 휘 제원(悌元), 판곡(板谷) 휘 윤해(允諧), 우계(牛溪) 휘 혼(渾)을 배향(配享)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 휘 송국(松國)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향사(享祀)하였다. 1729년(英祖5) 10월 16일에 8位의 위패(位牌-神主)를 봉향(奉享)하고 유림(儒林)의 건의로 물계서원(勿溪書院)으로 편액(扁額)하였다. 경종(景宗) 때 우상(右相)을 지낸 학암(鶴岩) 조문명(趙文命)이 초대원장(初代院長)으로 추대(推戴)되어 院長 손수 물계서원 현판(勿溪書院 縣板)을 써서 걸고 서원입규(書院立規)를 제정 게판(揭板)하고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제도를 따라 서원의 모든 규정을 법도(法度)에 맞게 제정하였다. 1787년(正祖11) 10월에 절효(節孝) 휘 수종(守琮)을 追享하였다. 1790년(正祖14) 10월에 원정비(院庭碑)를 세웠다. 이 碑는 대광보국숭록대부 행 판중추부사(大匡輔國崇祿大夫 行 判中樞府事) 이복원(李福源)이 찬(撰)하고 통훈대부 행 가평군수(通訓大夫 行 加平郡守) 조윤형(曺允亨)이 썼다. 1797년(正祖21)에 정절(貞節) 諱 사제(思齊), 충숙(忠肅) 諱 승(勝)을 追享하였다. 1808년(純祖8)에 이헌(怡軒) 휘 여완(汝完), 인재(仁齋) 휘 희(熺), 판서(判書) 휘 수경(守慶), 청죽(聽竹) 휘 람(灠), 부사(浮査) 휘 여신(汝信)이 追享되었다. 1814년(純祖14)에 부용당(芙蓉堂) 휘 안의(安義)를 추향(追享)하고 1857年(哲宗8)에 동고(東皐) 諱 준득(準得)이 추향되었다. 1997年에 독곡(獨谷) 휘 석린(石璘)과 가정(稼亭) 휘 언충(彦忠)을 추배(追配)하여 현재 21위(位)를 봉안(奉安)하고 매년 2월 중정일(中丁日)에 유림(儒林) 봉사(奉祀)로 춘향대제(春享大祭)를 봉행(奉行)하고 있다. 이 서원은 1866年(高宗3) 조령(朝令)에 인하여 훼철(毁撤)된 것을 1995년 복원하여 제향(祭享)과 강학(講學) 및 교육(敎育)의 장(場)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지(垈地) 4,776坪(境內面積 3025坪 境外面積 1751坪), 건물(建物) 14개棟, 延建坪 206坪, 숭덕사(崇德祠)(舊 世德祠), 현도문(顯道門) 또는 신삼문(神三門), 강당(講堂), 물계서원(勿溪書院), 중부당(中浮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전곡청(典穀廳), 영보각(永寶閣), 무변루(無邊樓), 원정비각(院庭碑閣), 및 고직사(庫直舍)등 부속건물(附屬建物)이 있다.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