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작지 않은 저수지가 많은 이곳은 호남 제일 정자 피향정 만나기 ^ ^
연꽃의 향기가 정자에 가득하다해서 짓어진 피향정이라는뎅 ~
본디 피향정의 앞뒤로 상 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능...
그 하연지 마져 공사중이라 쪼매 아쉬워서뤼~
지난 3월말 정읍의 피향정을 올려봅니당..ㅎㅎ
함께해요~ ㅎㅎㅎ
신라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군수로 재임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능..ㅎㅎ
현재의 정자는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축면 4칸의 팔작집이다.
사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려져 있다.
공포는 간결한 초익공 건물로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에는 작은 우물 천장이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다.
-정읍 피향정 보물 제 289호 안내판에서-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
5월 푸르른 날의 하루~ ^ ^
뿌나는 이런 각도 무척 좋아라합니당..
어때요!? ㅎㅎ
올 6월쯤에는 연꽃밭을 보고팟는뎅..지금은 공사중이라..ㅜㅡ...
아쉬웠던 피향정의 하루였답니당..ㅎㅎ
연지의 물이 어디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된담서..ㅎㅎ
작은 대문을 통해 피향정을 살펴봅니다.
선정비가 서있는 곳에서 피향정보기 ^ ^;;;
4월 초의 연지입니당..ㅎㅎ
중항의 함벽루 육각정이 참 멋나던 그때의 모습...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2고주 7량가(七樑架)
5월의 피향정에서 보는 연지
외진평주 18개, 내진고주10개로 총 28개. 이는 우주를 28숙으로 나눴던 사상을 따른 것이라 한답니당
피향정 내부 천정이 우물청정이라합니당 많은 한시와 글들~
(공부를 쪼매 했으면 알텐뎅..ㅜㅡ..아쉬웠담서~)
피향정은 그 당시 지나가는 이들의 쉼터라 불리우던 곳이었다능
건물 내부에는 이 누정을 거쳐간 시인 묵객들의 시가를 기록했다던 편액이 걸려있구요
피향정 반대편 어간 창방 위에는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어
피향정을 호남제일정이란 별칭으로도 불리우기도 했다능..ㅋ
피향정에서 바라보는 연지과 피향정의 겹처마 모습 ^ ^
4월 초의 피향정 ^ ^입니다.
높이가 맞지 않은 석축들을 선조의 지혜가 보이죠 !? ㅎㅎ
돌을 다듬어 높이를 맞추는 센수~ ㅎㅎ
멀리 함벽루와 피향정을 다른 방향에서 봅니다..ㅎㅎ
연지못의 중앙 함벽루 가는 길이 참..시원하죠!? ㅎㅎ
함벽루(澏碧樓)
함벽루의 역사는 안보여서뤼~ ㅜㅡ...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니...
2007년 봄에 함벽루라는 곳이 재정비로 사라지고 그 이름이 이곳으로...
태인 피향정
옆에 있는 함벽루의 편액은 성당 김돈희
가 몽련 김진민을 지도하기 위해 들러 쓴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함벽루는 이름만 ㅎㅎ 본디는 근처에 있었다능)
피향정은 상과 하의 연못이 있었다는 기록이 태인지(영조 20년경 간)에 나타나는데,
여기에는상연지의 둘레가 1, 444척이오 깊이가 2척이며 하연지는 둘레가 1,026척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피향정의 동쪽에 있는 상연지는 70여 년 전에 메워져 도로와 민가가 들어섰고,
하연지는 현재 남아 있어 가운데에 섬 같은 평지 위에 함벽루(涵碧樓)가 세워져 있다.
함벽루를 가려면 돌로 만든 다리를 지나야 하고 그 곳에 당도하면 커다란 편액을 만나게 된다.
‘함벽루(涵碧樓)’편액은 성당 김돈희가 해서로 장중(莊重)하게 눌러서 썼는데,
이 글씨는 아마도 태인의 명필인 몽련(夢?) 김진민(?珉)을 가르치기 위해 이 곳에 와서 써 준 것일 것이다.
즉 김진민의 스승인 성당 김돈희는 가끔 태인에 내려와서 이 고장의 문인묵객들과 교유하였고,
태인내 피향정의‘함벽루(涵碧樓)’와 읍원정의 ‘호상소유(湖上小游)’란 편액을 남겼다.
-전북중앙신문에서 옮김-
이곳이 하지연 ^ ^ 연못의 모습입니다.
피향정(披香亭)
culture.jeongeup.go.kr
문화재담당 063-530-7166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2-2
주차장 있슴..ㅎㅎ
피향정(披香亭)
- 지정번호 : 보물 제289호
- 소 재 지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101-2
- 지 정 일 : 1963년 1월 21일
- 규모양식 : 정면 5칸, 측면 4칸, 누정 익공계 팔작지붕
- 시 대 : 조선시대
피향정은 통일신라 정강왕(定康王, 886~887) 때 태산 태수였던 최치원이 세웠다고도 하며, 그가 재직 중에 소요하던 곳이었다고도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몇 가지 기록 등을 통해 중건내용 만을 알 수 있는데 기록을 종합해보면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李志宏)이 중건하고 현종 때 박숭고(朴崇古)가 중수하였다. 1715년에 현감 유근(柳近)이 피향정을 다시 중수하는데 이 때 서까래와 기와를 바꾸고 연못을 파냈다고 중수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1856년에도 현감 이승경(李承敬)에 의해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다.
이 정자는 정자의 앞뒤로 상연지, 하연지 두 개의 연지가 있어 꽃이 피면 주위가 장관을 이루고 연꽃의 향기가 정자에 가득하다고 하여 피향정이라 하였다.
피향정은 아래는 원형의 장초석을 받쳐서 높게 마루를 구성한 후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만든 누각형식의 건물이다. 자연석 외벌대의 낮은 기단 위에 커다란 초석받침을 놓고 장초석을 세웠는데 위로 갈수록 직경이 좁아지도록 흘림을 주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서 정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평면은 외진주 안에 다시 내진주를 세워 공간을 구획하였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내진 주위로 사방에 돌아가며 퇴가 둘러진 형태이다.
기둥의 배치에 따라 평면이 내외진으로 나뉘어 있지만 내부는 모두 하나의 공간으로 터져 있다. 그러나 향우측 내진 기둥에는 인방들이 끼워져 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다른 공간과 다르게 이 부분만 천장이 낮게 구성되어 있어 별도로 실이 구획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
이 건물의 천장은 연등천장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좌우측 협칸 상부는 우물반자를 가설하여 합각 밑을 가렸는데 이처럼 좌우측 반자 높이를 서로 다르게 구성하였다. 처음부터 실을 구획하여 이 부분만 낮게 천장을 구성한 것인지 천장에 높이 차를 두어 공간의 위계를 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가구는 평면에 맞추어 2고주 7량가(七樑架)를 취하였다. 내진고주 사이에 대량을 걸고 고주와 외진주 간에는 퇴량이 결구된다. 대량과 맞닿을 듯이 종량을 놓았으며 종량 중앙에 있는 화반대공이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는 초익공구조이다. 살미의 초각과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유려한 조선 중기의 건축수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창방 위에는 주간마다 화반 대신 2개의 소로를 배치하여 장혀와 도리를 지지하며 도리는 굴도리이다.
피향정은 사방을 개방하고 사면에 모두 퇴를 내어 계자난간을 시설했다. 계자난간은 외부로 휘어지는 계자각이 난간 두겁대를 받치므로 평난간 보다 공간의 확산 효과도 크며 장식적이고 주위와도 쉽게 동화될 수 있는 형태이다. 앞 뒤 어칸에는 승강을 위한 돌계단을 설치하고 출입을 위해 난간을 시설하지 않았다. 돌계단은 모두 7단이며 계단을 오르면 앞쪽에 ‘피향정(披香亭)’, 뒤쪽에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는 현판이 있다. 광한루를 호남제일루라 하면 호남제일정은 피향정이라고 흔히들 일컫는다.
내부에도 또 하나의 피향정 현판이 있는데 풍성(豊城) 조항진(趙恒鎭)의 낙관이 분명한 것으로 보아 밖의 것 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정자 안에는 중수기를 비롯해서 많은 편액들이 있는데 대부분 고운(孤雲)과 연지(蓮池)에 관련된 글들이다. (글, 도면 : 문화재청)
배치도
정면도
평면도
앙시도
횡단면도
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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