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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여행

[서울여행]서울 하늘 아래 또 다른 한국이 있는 여기는 서울속 남산골 한옥마을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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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 한옥마을 입구부터...국악당..타입캡슐을 ...지나서..이제...전통한옥마을로 들어가본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1890년대 짓은 집이다....

요즘 콘크리트로 지은 양옥은 집의 생명이 약 30년이라고 한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참..대단하시다..

 

그 아들에 ..아들까지 생각하는 현명한 지혜가...^^...

왜 요즘..현대인들은...모를까!!??

 

사실..요즘..집만 있으면...두려울 것이 없는 세상아닌가..^^;;;

 

뿌나 이런 집에 살고프당...ㅎㅎ

 

서울 삼청동 식당가에 있었던 전통가옥을 남산골 한옥마을 조성때..옮겨온 것이라한다..헐~~~^^;;;

조립식!!?? ㅎㅎ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민속자료 8호 1977년 지정.

(가옥의 옛 명칭은 김홍기 가옥이랍니다.^^)

 

한옥5동(이전복원현황)

 

조망도 ㅎㅎㅎ 남산골한옥마을 홈피에서 퍼온것입니당..ㅎㅎ  

 

한옥5동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ㄱ'자형의 안채와 문간채가 합쳐져서 전체적으로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안채,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도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조화롭게 잘 꾸며진 양반집 주택이다.

조선시대 한옥과는 건물배치를 약간 달리하는 구한말 도시화에 잘 적응한 한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

-한국의 건축/한옥/고택-

 

 

 

 

집을 그리는 삶의 건축답사기 -박정연님- 옮겨옴.

 

 

마당을 끼고 장독대 ^^;;;가 있고..

 

 

옛 굴뚝을 보면 참..과학이 숨어있다..그리고..편안함을 느낀다..왤까!!?? ㅎㅎㅎ

이곳이 사랑채 뒷쪽이다..^^

 

 

 

대청마루에는 전시된 목화에서 실을 짯던 물레를 비롯한 도구들

옛날 할머니세대의 여인들에게 중요하면서도 힘들었던 일이였을 것이다.

 

 

 

대청마루 중간 기둥에 있는 글 ^^ 강해보인다..무슨 뜻이지..ㅜㅡ....학~~~

 

 

 

부엌내부의 모습...^^

 

 

부엌에 딸린 마룻방, 뒤주를 비롯하여 생활용구들이 보관되어 있네요...ㅎ

 

 

부엌과 붙어 있는 곳으로 보아..곡간 정도 될 듯..자물통으로 잠겨있었당..ㅎ.ㅎ 무엇이 들었을까!!??

 

안채 건너방 ^^;;;

 

'ㄱ'자형으로 된 안채는 앞면 2칸규모의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건너방이 있다.

안방이 있는 몸채 부분에 방들이 있고, 문간채와 붙은 건물에는 부엌과 광을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어릴쩍..친할머니가 살고 계셨던 서울 노원의 집에 놀러왔을때..아마..이런 구조지 않았나 싶다..^^...

 

 

 

앞면 3칸으로 이루어진 안방과 문간채 사이의 건물은 부엌과 광으로 이루어져있다.

 

 

 

 

 

디딜방아~기억나지쇼 ^^ 제 2 부 마지막부분에서 한옥으로 간다할때..ㅎㅎ 그곳입니당..ㅎㅎ

 

 

 

마루에서 본..남산골 주변은 남쪽에는 남산

북쪽에는 북악산, 서쪽에는 인왕산, 동쪽에는 낙산이라한다..

주변이 4개의 산으로 둘려싸여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옛 가옥의 맛을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서울의 팔대가 (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으로부터 일반 평민의 집에 이르기 까지 전통가옥 5채를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 5가옥 중의 하나인 순정효황후 윤씨친가,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오위장 김춘영가옥,도편수 이승엽가옥이 있다.


그 5개 전통 가옥중의 하나인 순정효황후가 동궁 계비로 책봉되기전 13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원본은 종로구 옥빈동에 있는 집을 너무 낡아 옮기지는 못하고 건축방법을 그대로 본떠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집의 평면은 "ㄷ"자형 몸채 앞쪽에 사랑채를 두어 전체 평면은"ㅁ"자형 구조이다. 이집은 4분항문이라고 불리는 개폐식이면서도 위아래로 열리는 문이 있다.그문이 발달해서 오늘날의 자동문이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가옥은 해동부원군 윤택영댁 재실인데 조선제 27대 순종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이 동궁의 계비로 책봉되어 창덕궁으로 들어갈 때 지은집으로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가옥을 이전 복원하였다. 그 집을 위에서 보면 元(으뜸원) 자 인데 이러한 집은 우리나라 전통가옥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 가옥은 서울 팔대가 중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는 조선제 25대 철종의 딸 영혜옹주의 남편 박영효가 살던 집으로 원래는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이였다고 한다. 복원 당시에는 안채만 남고 모두 없어졌는데 한옥 마을을 조성하면서 사랑채와 별당채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가옥 형태 자체가 "ㄷ"자 모양인데 이러한 가옥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네 번째 가옥은 오위장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것을 이전해서 복원하였다. 김춘영은 조선말기에 오위장을 지낸 분이시다.


다섯 번째 가옥은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경복궁는 될때 도편수였던 이승엽이 1860년대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었던 것을 복원하였다.원래는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안채와 사랑채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고 한다.

- 문화속으로 푸른누리 뉴스 옮김-

 

어느 방향으로 보던..하늘만 보면..남산타워가 보인다..^^;;;

여기는 남산골입니당..ㅎㅎ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은 일반 살림집이 아니고, 윤씨 일가의 재실(齋室)이었다. 윤택영은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생부다. 이 가옥은 원래 동대문구 제기동 224에 있었는데, 옛 이름은 '제기동 정규엽가(祭基洞 丁奎葉家)'이다. 현재는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성된 남산한옥마을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 가옥은 윤택영이 그의 딸이 1906년 동궁 계비에 책봉되고 이듬해 황후가 되어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집으로 전한다. 가옥 전체의 분위기는 살림집이라기 보다는 재실 용도에 걸맞게 되어 있다. 이 가옥은 순종이 제사하러 왔을 때의 불편을 덜기 위해 경운궁(慶運宮)을 헐 때 나온 부재를 이용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사랑채ㆍ안채ㆍ사당채를 포함한 전체 건물배치 형태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통한옥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元(원)'자형으로 된 길상문자(吉祥文字)를 이루었다. 이 가옥의 제일 안쪽 높은 터에는 '元'자형 배치의 북측 머리에 해당하는 '一'자형 평면을 한 사당이 자리잡았다. 사당 앞 남쪽 한 단 낮은 터에는 '元'자의 '兀'자를 이루는 안채ㆍ사랑채ㆍ행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서로 길게 연속되어 '兀'자의 상부를 차지하며 '一'자형의 몸채를 이루었고, 그 앞 동·서 행랑채가 ' '자 형태를 이루며 몸채에 연속되어 있다.
사당은 4·19혁명 때 화재로 소실되어 초석만 남은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 함께 복원했다. 정면 가운데에 한 벌 계단을 설치한 화강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며, 정면 4칸을 구성하는 각 기둥 사이에는 사분합문을 달았고, 나머지 세 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다. 사각기둥 초익공이고, 모두 굴도리를 사용한 무고주(無高柱) 5량 가구(架構)에 홑처마 박공지붕이다.
안채는 '一'자형의 서쪽 끝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부엌을 두었고, 그 동쪽으로 안방(3×1.5칸), 대청(3×1.5칸)을 차례로 두어 동쪽의 사랑방과 연결되게 하였으며, 안방과 대청 앞에는 반 칸 폭의 툇간을 두었다.
대청 동쪽에는 2×1.5칸 크기의 사랑방이 있으며, 그 동쪽 끝은 1×2칸 크기의 누마루가 있다. 사랑방 앞에 있는 반 칸 폭의 퇴는 대청 앞 퇴와 연속되었다. 사랑방에서 안채 쪽으로 향한 툇간 측면에는 두 짝 여닫이를 달았고, 이와 마주하는 안방 전퇴의 동쪽 측면에도 두 짝 여닫이를 달아, 가운데 대청을 두고 안방과 사랑방 사이로 공간이 개방되는 것을 조절하도록 보완하고 있다.
안방 전퇴의 남측으로 뻗은 '兀'자형의 왼쪽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일 위쪽에서 차례로 누마루 1칸, 방 2칸(원래는 방 1.5칸, 벽장과 함실아궁이 반 칸이었음), 방 1칸, 광 1칸으로 구성되었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꺾이며 중문간 1칸, 문간방 1칸, 광 1칸을 두었다. 대청 오른편 전퇴에서 남측으로 뻗은 '兀'자형의 오른쪽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일 위쪽에서 차례로 방 2칸, 방 2칸, 방 1칸으로 구성되었고, 다시 동쪽으로 꺾이며 마루 2칸, 방 1칸을 두었다.
안방 앞의 안마당은 서측 행랑의 중문으로 통하고, 사랑방과 사랑마당은 동측 행랑 끝에 뻗어 나온 담의 일각대문으로 드나들게 되었다. '兀'자형 배치평면의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가운데 마당은 전면 동서 행랑채 벽선을 따라 만든 담의 일각대문으로 드나든다.
안채와 사랑채는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1고주 5량으로 전면 평주와 고주에 툇보를, 고주 후면 평주에 대들보를 걸었다. 고주머리와 대들보 안쪽에 세운 동자기둥에는 종량을 걸고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전면의 처마도리와 종도리는 굴도리이고 나머지는 납도리인데, 종도리 밑에는 장혀와 소로받침을 두어 판대공의 도리방향으로 끼운 첨차로 받치고 있고, 이것은 다시 뜬창방으로 받쳤다. 몸채 지붕은 팔작기와지붕이며, 행랑채는 3량 가구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서울문화재 옮김-

지 정 번 호 :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4호
지정연월일 : 1977년 9월 5일
시         대 : 1907년으로 추정
규 모/양 식 : 몸채 팔작지붕, 맞배지붕, 사당 박공지붕
재         료 : 석조 기단, 목조
소   유   자 : 시유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2가 84-1 한옥마을 (옛소재지) 동대문구 제기동 224

 

 

 

 

 

 

 

 

 

 

 

파노라마로 본..^^ 한옥마을이당..ㅎㅎ

 

 

 

 

 

움막같죠?? 옛날..장독대를 뭍어두었던 곳이랍니당..ㅎㅎ

 

 

요건 우물 ^^;;;

 

 

 

 

야외 가마솥 ^^...

 

 

 

 

 

 

생활가구되겠네요..ㅎㅎ

 

 

멀리보이는 남산타워~~ㅋㅋㅋ

 

 

 

 

 

멀리 남산의 남산타워 ^^;;; 어디에서던...딱!! 보인당..ㅎㅎ

 

 

 

 

 

 

 

 

이제...한옥체험에서 할수 있는..한복체험및..한지체험...여러가지 전통문화배우기가 되것당..ㅎㅎ

 

 

 

 

 

 

 

 

 

 

 

 

 

 

 

 

 

 

 

 

 

 

 

남산골한옥마을 홈페이지 ^^;;;

http://hanokmaeul.seoul.go.kr/index.jsp

 

이용안내

개방시간 : 04월 ~ 10월 (09:00 ~ 21:00) 11월 ~ 03월 (09:00 ~ 20:00)

무료관람

* 휴무일 : 매주 화요일


지하철

- 3, 4호선 충무로역 하차, 3, 4번출구 (동국대 충무로 영상센터와 매일경제신문사 사잇길로 150m)


시내버스

- 퇴계로3가(극동빌딩 앞) 하차 0013, 0211, 104, 105, 263, 371, 400, 604, 7011
- 퇴계로3가(한옥마을, 한국의집 앞) 하차 0013, 0211, 104, 263, 02

* 남산골 한옥마을은 주차장이 협소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십시오.

찾아가시는 길 ^^;;;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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