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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여행

[진안여행]마이산 남부 주차장쪽 천년사찰 ""금당사""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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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의 마이산이라하면 사람들은 마이산 석(돌)탑이 있는 탑사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북쪽의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마이산 남쪽주차장 방향에서 마이산 석(돌)탑 답사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식당가가 즐비하고..그 끝나는 지점에...

왼쪽으로 그렇게 크지는 않치만 신기한 금동불상과 금동탑이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바로 이곳이 1,300년 전통의 백제 고찰이라고하는 금당사(金塘寺)이다.

 

금당사(金塘寺)는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41번지 마이산에 자리잡고 있다.

절의 창건은 650년(백제 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 스님의 11제자 가운데 한 분인 무상(無上) 스님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 등과

함께 세 웠다고 전한다.

 

요기로 가면 상세하게 설명되어있다..참조하세요...ㅎㅎㅎㅎ-http://www.geumdangsa.co.kr/-

 

 

 창건된 당시의 절은 지금의 위치에서 악 1.5㎞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고 한 다. 그래서 예전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 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 절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은 1675년( 숙종 1)의 일이다.
한편 또다른 창건설로는 814년(현덕왕 6) 또는 876년(헌강왕 2)에 중국인 혜감(慧鑑)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말도 전하는데, 문헌의 기록이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역사가 1300년 정도되니..문헌이..현존할리가...ㅜㅜ -쭈니생각-)

 

 

 금당사(金塘寺)

금당사의 당은 못당이당..그래서 연못을 끼고 있는 절이란 말이다..기억하장...ㅎㅎㅎㅎ

 

 

 

금당사 3층석탑은 경내의 연못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석탑은 백제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연못에 비친 석탑의 그림자는 미처 피어나지 못한 백제의 미륵세계에 대한 염원의 안타까움을 느끼 게 한다.

백제 미륵신앙과의 관련성은 보다 깊은 고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1400년 백제고찰(百濟古刹) 금당사... 마이산의 위상 정립과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 3世上에의 귀착점을 가늠할 한복판에 서 있다.

 

 

 

 

 

 

 

 

 

 

 

 

 

 

 

 

 

 

 

 

 명부란 염마왕이 다스리는 유명계 또는 명토(冥土)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고,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 불로 모신 곳이므로 지장전이라고도 하며,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극락보전·무량수전·무량전·보광명전(普光明殿)·아미타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극락정토신앙이 강하여 내부 구조는 대웅전만큼이나 화려하다.

 

 

  

* 금당사 괘불탱화의 전설

 

  •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수도승의 생활은 신선과 같았고 부처님의 높은 도를 깨우친 분이었다고한다.
    어느해 늦은 봄이었다. 매우 가뭄이 심하여 사람들은 금당사에서 수도하는 스님에게 찾아가 애원 하였다. 스님은 정색을 하며 기우제를 드리자고 하고 밤이되자 스님은 호랑이 등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 사람들이 기우제 준비를 마치고 사흘을 기다리니 스님이 절의 뒷마당에 사람을 그리고 그 곳을 백자만 파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모두들 주저하였으나 스님의 말대로 파기 시작했고 드디어 백자가되는 땅속에서 부처님이 그려진 한 폭의 괘불이 나왔다. 이 괘불을 절에 걸고 기우제를 올리자 기다리던 비가 오기 시작하엿다.
    지금도 가뭄이 심할때면 금당사에서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의 제자 여럿이 스님의 도술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달걀을 개어 떡을 구워놓고 스님에게 살아있는 병아리를 만들어 보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경을 외며 조용히 꿇어 앉아 살아 있는 병아리로 만들어 보이었다. 상좌들과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도술에 크게 탄복하여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이 스님이 바로 공민왕때의 고승 나옹스님이다.

    금당에서 북쪽으로 500m거리에는 나옹대사가 크게 대각을 얻었다는 고금당이 있다. 도 이곳에서는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 전봉준장군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일설이 있다.

 

*마이산 도립공원 이용료 가운데 문화재 관람료의 일부대상이 바로 이괘불이랍니당..ㅎㅎㅎㅎ

전라북도지방유형문화제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1997. 8. 8.보물로 지정된 금당사 괘불은 숙종12 (1686)년에 황화원(畵員)인 명원(明遠),조지연(趙志淵),비구(比丘) 3인이 마포(麻布)위에 진당채(眞唐彩)로 그렸다 한다. 폭 5m, 높이가 9m나 되는 거대한 의식용 불화로 직조된 마포麻布에 단독單獨의 관음보살입상(觀音菩薩立像)이 그려져 있다.

 


 

 

항상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대웅(大雄)’은 고대 인도의 ‘마하비라’를 한역한 말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하였다.  

 

 

 

 

 

 

 

금당사는 1905년 일제의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또 사지 호남지역 항일운동의 최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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