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매연,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더운 공기, 수시로 비가 내려 끈적끈적해서 불쾌지수가 이를 데 없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씨. 콜카타의 하우라역에 내렸다. 역을 빠져나와 물어물어 택시 타는 곳을 발견! 딱정벌레처럼 납작하고 안이 비좁은 노란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는 서더 스트리트. 콜카타의 여행자 거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여행자가 머물만한 숙소가 밀집된 곳이다. 대도시답게 도로는 주차장처럼 차들이 빼곡했다. 심각한 교통 체증이 한창이었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노란 택시들이 줄지어 멈춰 있었다.
내가 탄 택시 꽁무니를 따르던 한 택시는 땀을 뻘뻘 흘리는 운전사와 덩치 큰 손님이 힘겹게 구겨져 있어 몹시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차가 느릿느릿 거북이 운행을 하는 틈을 타서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을 법한 예스러운 모습, 다름 아닌 동인도의 대도시 콜카타의 일상이었다.
"다그닥다그닥" 경찰들이 탄 말이 발을 맞춰 내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가끔은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관광용 마차가 지나가기도 했다. 눈앞에는 인력거 끄는 사람이 흥건하게 땀에 젖은 모습으로 뛰어갔다. 새처럼 가는 다리에 맨발로 끄는 인력거 뒤에는 토실토실하게 살 오른 여자가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역할을 맞바꿔야 타당할 듯 보였다.
대로변은 영국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시절 한때 수도였던 탓에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유럽식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댕댕" 경적 소리를 울리며 선로 위를 달리는 트램은 도로를 가로질러 달리고 있어 차 막힘에 톡톡히 한몫을 했다.
1시간쯤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깨갱거리며 숙소를 구하러 다녔다. “빈방 있수?”
프런트를 지키고 있던 젊은 남자는 “물론!”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방을 안내했다. 삐거덕. 방문이 열리자 더블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이 보였다. 창문이 없어서 감옥이라 하기에도 부족한 방이었다. 극장처럼 어두컴컴했다. 차마 침대 위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아 검지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침대를 꾹 눌러보는 것으로 상태를 점검했다.
침대는 매우 딱딱했고 시원찮은 소리를 내며 열리던 방문처럼 삐거덕거렸다.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을 뿐인데 침대는 불쾌하다는 듯 끼익 하고 나무 뒤틀리는 소리를 냈다. 이 침대에 내가 드러누웠다고 상상해 보라. 보나 마나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고 말게 틀림없었다.
칙칙한 방의 음침한 기운이 고스란히 스며든 꾀죄죄한 천 조각은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처음 사들였을 때는 색이 선명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무늬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 얇은 천이었다. 천은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무늬마저 희미해져 있었다. 군데군데 구멍 난 흔적도 보였다. 뒷걸음질쳐 숙소를 뛰쳐나왔다.
다른 방을 구해야 해.. 다른 방을...
다 거기서 거긴겨...
숙소찾아 삼만리~
돈을 좀 더 얹어서라도 좋은 방을 얻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빈방 있수?”를 외쳤다. 어째 이 동네는 숙소 사정이 녹록치 않은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빈방이 없단다. 동네를 이 잡듯이 뒤져서 적당한 숙소를 발견했다. 트윈룸이었는데 싱글침대 두 개가 있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방이었다.
그리고 감옥에나 딸려 있을법한 단출하고 축축한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그래도, 처음 보았던 방보다는 좋아 보였다. 일단 침대에 덮여 있는 하얀 시트가 마음에 들었다.
주인장 말로는 날마다 깨끗하게 세탁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때마침 가지런히 접힌 하얀 시트가 숙소로 배달되었다. 물론 이 숙소가 흡족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청결하게 느껴져 묵기로 했다. 시허연 침대 시트가 일종의 착시현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튿날 밤. 열 시쯤 되어 팔에 모기를 콕콕 세 방이나 물렸다. 방이 후덥지근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모기를 초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기에게 수혈하고 모기 가족의 영양공급원이 되는 일은 지극히 당연했다. 가려움을 면하기 위해 침을 바르고, 손톱을 세워 십자 표시를 냈다.
약 십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팔을 모기가 '다다다다' 물어 놓았다. 어느새 빨대를 꽂은 것인지 소리 소문 없이 수십 군데를 물고는 냅다 달아났다. 가려웠다. 매우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 박박 긁어댔다.
이상했다. 모기라기엔 너무 많았고 무진장 가려웠으며 순식간에 아주 많은 곳을 물렸다. 모기 군단이 떼로 몰려와 공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기를 목격하기는커녕, 모기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미심쩍고 수상했다.
그러다 문득, 모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기라기엔 이상하지 않은가! 여행 안내서를 뒤적거렸더니 범인은 빈대였다.
꺄악!!!
이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허벅지와 종아리, 팔이 녀석들에게 점령당한 뒤였다. 끔찍했다. 모기에 물린 것보다 작고 볼록하게 튀어나온 붉은 자국들.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야밤에 약국을 가겠다며 숙소를 나섰다. 다행히도 대도시라, 24시간 운영되는 약국이 있었다.
다급하게 숙소 계단을 내려오는데 웬 남자가 프런트에 매달려 항의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았더니 투숙객이었던 남자도 빈대에 물렸단다. 그런데 세상에나. 그의 팔은 결코 온전치 못했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멍게보다 더 붉고 촘촘하게 부풀어 올랐다. 도대체 얼마나 긁적거린 건지 딱지가 내려앉기까지 했다. 등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심지어 군데군데 고름이 곪아 터졌단다. 절망적이었다.
내 피부가 저리된다면, 혹은 빈대가 목을 타고 얼굴에 침입하여 얼굴을 쥐어 뜯어놓는다면!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런데 피부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투숙객 왈. 괜찮단다.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그 꼴을 하고서 괜찮다니, 도대체 어디가 괜찮다는 건가. 약국으로 달려갔다.
빈대에 물렸다고 하자 약사는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새끼손가락만 한 연고 하나를 달랑 내밀었다.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물린 면적으로 보아 연고가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았다. "더 큰 걸로 주세요." 하고 검지만 한 연고를 받아들자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것도 불안해서 먹는 약을 달라고 떼를 썼다.
쌀알만 한 알약 두 개를 받아들고 꿀꺽 삼켰더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득실득실 빈대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옷가지며 두르고 있던 숄이며 침낭까지 찜찜한 기분을 자아내는 온갖 것들을 죄다 버렸다.
빈대를 퇴치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타 죽기 직전의 뜨거운 물로 씻든지, 빈대의 적 강렬한 햇볕을 쬐던지. 내 당장에라도 옥상에 벌거벗고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콜카타에는 거의 날마다 한 번씩은 비가 내렸다. 아스팔트에 바늘 같은 빗줄기가 내리꽂히는 습한 지역이었고 열악한 숙소에 뜨거운 물 따위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정대로 다른 도시로 떠나는 기차를 탔다. 37시간 기차에 갇혀 꼬박꼬박 연고를 바르며 이동한 끝에 날씨 좋은 도시의 쾌적한 숙소 옥상에 드러누울 수 있었다. 죽도록 근질근질한 것을 참아가며, 시시때때로 연고를 발라댄 덕분에 빈대는 서서히 나를 떠나갔다.
빈대 안녕~
누군가 나에게 난 빈대 붙을 거야라고 말하면 주저하지 않고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는 근질거림은 생각보다 훨씬 약 오르고 끔찍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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