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를 지키고 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 왈,
"내일 아침에는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을 거요, 버스 운행도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축제를 즐길 거요. 밤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지만, 내일은 위험하니 이동하지 않는 편이 좋겠소."라며 다음날 떠나기를 권했다.
북치고 장구치고 다 같이 홀리!
디왈리, 두세라와 같이 인도에서 가장 광적인 축제로 꼽히는 홀리. 힌두 축제 중 요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우리나라가 명절을 음력으로 쇠듯, 힌두 음력으로 '팔군'이라는 달에 벌어진다.
팔군은 우리가 보는 달력에서는 2월과 3월에 걸쳐 있는 달이다. 초승부터 시작해 그믐까지를 한 달로 치는 것과 다르게, 힌두 음력은 보름부터 시작해 다음 보름까지를 한 달로 친다. 지역마다 축제 기간이 조금씩 다르다. 델리 등 대도시는 당일에만 격렬한 축제가 벌어지는 반면, 시골 마을에서는 1주일 남짓 이어지기도 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더운 남인도에는 겨울다운 겨울이 없어서 주로 북인도에서 행해진다.
인도에서 열리는 축제는 대부분 인도 삶 곳곳에 스며 있는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홀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옛날에 히라냐카시프Hiranyakashipu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3대 신 중 파괴의 신 시바를 열광적으로 숭배했는데, 그의 아들은 쁘랄라드Prahlad는 세상을 유지하는 신 비슈누를 섬겼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왕은 왕자를 없애기 위해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동생인 홀리카Holika에게 부탁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불에 타지 않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악한 홀리카 이모의 최후
사악한 이모는 조카를 안고 불에 뛰어들라는 지시에 따랐는데, 어찌된 일인가. 놀라운 능력은 온데간데없고 홀리카만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악의 탓에 효험은 사라지고 왕자는 비슈누 신이 구해준 것이었다. 이 때문에 축제 전날,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면 불을 피워 나무나 짚더미, 혹은 사람 형상의 인형을 태우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이렇게.
홀리에 색색의 가루를 뿌리게 된 것은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인 크리슈나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크리슈나는 그의 어두운 피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어머니에게 종종 불평을 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라다의 흰 피부를 질투하기도 했는데, 이를 보고 그의 어머니가 라다의 피부에 색색의 물감을 바르면 어떻겠냐고 했고, 장난기 가득했던 크리슈나는 라다의 얼굴에 물감을 던져댔다. 신들의 짓궂은 장난을 시작으로 홀리 때 물감을 던지게 되었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물총과 여러 가지 색상의 가루를 판다. 굴랄이라 불리는 염색 가루를 사다 두었다가 축제날이 되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루를 뿌려댄다.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교통수단도 멈춘다.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얘네들이 굴랄
이날만큼은 종교적, 관습적인 금기가 무시된다. 법적으로 사라졌으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인도의 신분제도 카스트의 벽이 허물어지고, 남녀 간의 벽이 얄팍해지기도 하며, 종교적인 이유로 마음껏 마시지 못했던 술을 양껏 들이켜기도 한다. 홀리 당일 거리에서는 말끔한 행색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
성별, 나이, 사회적 지위 고하를 불문, 물감범벅이 된 채 "해피 홀리"를 외친다. 사람은 물론이고, 개와 소 등 동물에다 집 앞마당이며 담벼락, 차까지 눈에 띄는 건 죄다 총천연색을 뒤집어쓴다. 온 도시가 무지개 빛으로 물드는 축제의 현장!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즐겁기 짝이 없는 축제지만, 혼자 여행하는 외국인 여자 여행자의 처지로는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물감이 묻는 건 전혀 상관없다. 내가 만약 남자라면, 단순하게 물감을 묻히고 물풍선을 던지는 정도라면 발 벗고 뛰쳐나가 놀고 볼 일이지만, 이날만을 벼른 일부 불순한 남정네들이 많아 그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상기 인물들은 일부 불순한 남정네들과 연관없음
2008년 3월에도 나는 인도에 있었다. 그때는 델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즈에 머물렀다. 이유 없이 물벼락을 맞고 난 후에야 다음날이 홀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축제 전날 저녁이 되자 물풍선이 마구 날아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물풍선을 맞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던진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옥상이나 골목에 숨어서 잽싸게 던지고 숨었다. 어딘가에서 재밌다고 키득키득 거릴 생각에 약이 살짝 올랐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범인 색출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축제 전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날. 2008년 3월 22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찌 된 일인지 빠하르간즈가 조용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함 마저 감돌았다. 폭풍전야였다. 평소 같았더라면 수많은 배낭여행자와 그들을 붙드는 있는 호객꾼들이 거리를 빼곡하게 메우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이상하다 싶었다. 상점은 단 한 곳도 열지 않았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문제는 배가 고팠다. 밥은 먹어야겠는데, 레스토랑이 모두 문을 닫았다. 골목을 빠져나가면 끼니를 때울만한 곳이 있을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어제처럼 물풍선에 흠뻑 젖을 각오쯤은 해두고서 식비만 달랑 들고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얼마나 축제를 즐긴 것인지 온몸에 물감으로 범벅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처음에는 하나 둘이었던 것이 열이 되고 삽시간에 수십 명이 되었다.
손에는 색색의 가루가 있는 봉지를 하나씩 들고, 한 움큼씩 쥐어 내 얼굴에 발라댔다. "해피 홀리!" 그때까지는 나름 '해피' 였다.
그런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얼굴에만 바르던 가루가 온몸에 발라지기 시작한 것!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은 기본이고 심지어 똥침까지, 수십 개의 손이 왔다갔다 했다. 만져도 너무 만졌다. 결국, 얇은 인도산 윗옷이 박 찢어짐으로써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옆에 남자 일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봉변을 당했다. 당혹스러웠다. 숙소로 돌아가 씻고 또 씻는데, 물감이 끊임없이 빠져나와 한참을 씻어야 했다.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보니, 올해 홀리 축제 때는 호텔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오후 2~3시가 되면 파장 분위기다. 나는 결국, 이때까지 호텔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창문에 매달려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축제가 파장 분위기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엉망이 된 얼굴을 씻고, 난장판이 된 집 앞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밖으로 탈출!
홀리가 즐거운 축제인 것은 분명하다. 알록달록 물감으로 물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멋지고 색다른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나라고 왜 축제를 즐기고 싶지 않았겠나. 전야제부터 시작되는 펑펑 퍼지는 불꽃놀이 소리를 들으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나도 불타는 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작년에 겪은 일은 생각하면 꼼짝 않기를 참 잘했다 싶어진다.
누구나 축제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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