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초대 현감을 지낸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얼과 정기가 서려 있는 곳.
충렬사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1949년 8월 공사를 시작. 6.25 사변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 되었다가 14년 뒤인 1963년 4월에 준공.
충렬사공원(충무공원)은 충열사를 중심으로 정읍시청 옆의 성황산에 조성된 공원이랍니다. ^^*
향우 뿌나가 정읍 9경을 다~~포스팅해버릴테당..ㅎㅎㅎㅎㅎ
홍살문과 선양루의 누각이 시작이랍니다..ㅎㅎ
겨울의 눈과 함께 충렬사를 방문했는뎅...
여름에..꼭..이곳을 방문하고픈 생각이..^^;;;
1985년에 건립되었다네요..ㅎㅎ
초입에서 효충문을 바라봅니다..^^;;;
다행이 한쪽이 양지라..눈이 녹아있었습니다..ㅎㅎ
외삼문
효충문
효충문 바로 앞의 두 상징물입니다..^^;;;
팜플렛과 인증샷 !!!
안까지 들어가고픈디..ㅜㅡ...오늘은..거시기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휴무...
관람시간 09:00~ 18:00
1985년에 건립된 효충문(效忠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이 나오고,
외삼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이순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사우(충렬사)가 있다.
사우 왼쪽으로는 광의당(光義堂)이, 오른쪽으로는 창건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광의당
주변으로 충렬사를 봅니다...눈이 소복이 쌓인 충렬사의 겨울
또 다른 아름다움과 이순신 장군의 큰 고마움을 느껴봅니다.
뿌나는 한국의 담장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아무도 들어간 흔적이 없다눈...^^
이날은 충렬사 휴무일 목요일입니당..ㅜㅡ...
담장으로 눈이..^^
이곳에...거북선과 임진왜란의 모습등..작은 박물관이라도 있었으면하는 개인적인 바랩을 해봅니다.
분명..이정도이면 이곳은 봄 여름 가을에 많은 학생들이 방문할터인데...ㅎㅎ
이런곳에 임진왜란관 관련된 시사교육의 현장이 있었으면했네요..ㅎㅎㅎ
그럼..그 교육효과가 참 클 듯했답니다..ㅎㅎㅎ -뿌나생각-
이모습이 그냥..참 좋았답니다..ㅎㅎ
사진은 제가 본 것과는 쪼매 틀리네요..이해해주삼..ㅎㅎㅎ
충렬사 앞에서 본
선양루와 시가지모습.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서울에서 태어나
1576년 무과에 급제하고
발포수군만호. 훈련원참군등을 거쳐
1589년 정읍 현감으로 부임하여 2년
간 덕치선정을 하시다가 전라좌도수군절
도사로 떠나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한려수도 행상등에서 많은 왜적을
격침시키고 1598년 노량해전에서 장열히
전사하였다.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다.
주변에는 많은 기념비가 즐비합니다..^^;;;
홍살문에서 이방향으로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올라오다 보면..오늘쪽으로 많은 비석이 있죠 ^^
시간이 없었서..하나하나 읽지는 못했지만...
홍살문에서 올라올때 보는 모습 ^^;;;
틀린방향 ^^(요게 3D ㅋㅋ)
눈이 많아서...이곳으로 가면 한국전쟁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산화한 이 고장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의 얼을 담아 탑이 있다했는뎅...
다음을 기약했네요..ㅎㅎㅎ 누가 그랬죠..조금은 남겨둬야..다음에 또..올..핑계가 되죠..ㅋㅋ
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ㅎ
애국선열을 우러러보며 와 비석.
정읍의 3성현이랍니다. ^^
박준승 선생님, 전봉준 장군, 독립운동가 백정기 의사
정읍시민들의 충효정신을 새기기위해서 둔 듯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미쿡 (국) 의 대통령들을 새긴..ㅎㅎㅎㅎ
이렇게 보니 또 새롭습니다..^^
더~자세한 내용은 마지막 부분에 올려놨습니다..^^(친절한 뿌나씨.ㅋㅋㅋ)
조선 선조 때의 명장.
공원을 내려다보는 곳에..이렇게.우뚝서 있습니다..ㅎㅎㅎ
요기서 바라보면..딱 이렇게 보입니다..^^;;;
자..이제 주변을 볼까요 ^^;;;
시청방향으로본...^^..모습.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휴무...
관람시간 09:00~ 18:00
충렬사
063 - 530 - 7166
전북 정읍시 수성동 충정로 228 - 13 (시청이 바로 옆이므로 시청주차장을...^^이용하시면.)
정읍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뿌나는 걸어서 왔네요..ㅎㅎ
버스로 약 2정거장 (?)
벗님들 알아서 판단..ㅎㅎ
정읍역은 조금 더~멀겠죠?? ㅎㅎ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21세기 이순신 양성
더 자세히 이순신장군이 궁금하신분은 클릭 ^^
http://yisunsinkr.prkorea.com/
죽기로 각오하고 싸우면 화살이 피해서 살게되고
살려고 이리저리 피하면서 싸우면 반드시 죽는 법이니라.
이곳이 옛 정읍중학교 터라고 하네요..ㅎ
그리고 음료대가 얼매나 추운지 보이시죠 ?? 헐~~
애향보충비 뒤쪽으로 보이는 곳이 정읍시청입니다..^^;;;
이곳은 역쉬~이곳 정서가 있습니다..ㅎㅎ
지금 충렬사가 있던 자리에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고 나서 신사가 있던 자리에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서 세우게 된 건물이 충렬사 랍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문화가 있었던 이 장소에 정읍의 현감이였고,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을 크게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세워지는게 큰 의미로..다가온다...음....^^;;;;
일본인들이 우리의 금수강산에 말뚝을 박는 것 보다..훨~~낳은데요..ㅎㅎㅎㅎ
뿌나 성현들이 보이는 것으로 인증샷 !!!
무지 추웠담서...ㅎㅎㅎㅎ
전봉준장군
정의
1855(철종 6)∼1895(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개설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고부군 궁동면 양교리(宮洞面陽橋里: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아버지는 고부군 향교의 장의(掌議)를 지낸 창혁(彰爀 혹은 承彔)이다.
생애
아버지 창혁은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 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집안이 가난하여 안정된 생업이 없이 약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방술(方術)을 배웠다. 항상 말하기를 “크게 되지 않으면 차라리 멸족(滅族)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고 한다.
태인 산외리 동곡(山外里東谷) 마을에 옮겨 자리잡았을 때에는 다섯 명의 가솔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스스로 선비로 자처하면서 세 마지기[三斗落]의 전답을 경작하는 소농(小農)이었으며, 이 무렵 농사일 외에 동네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는 훈장 일로 생계를 보태기도 하였다.
1890년(고종 27)경인 35세 전후에 동학에 입교, 그 뒤 얼마 안 되어 동학의 제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接主)로 임명되었다.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스스로가 말하고 있듯이, 동학은 경천수심(敬天守心)의 도(道)로, 충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輔國安民)하기 위하여서였다고 한다. 동학을 사회 개혁의 지도 원리로 인식하고 농민의 입장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을 결합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활동사항
농민 봉기의 불씨가 된 것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서 비롯되었다. 조병갑은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의 서질(庶姪:형제의 조카)로서 여러 주ㆍ군을 돌아다니며 가렴주구를 일삼아 농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1892년 고부 군수로 부임한 이래 농민들에게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과중한 세금과 재물을 빼앗는 등 탐학과 비행을 자행하였다.
한재(旱災)가 들어도 면세해 주지 않고 도리어 국세의 3배나 징수하였고, 부농을 잡아다가 불효ㆍ음행ㆍ잡기ㆍ불목(不睦:사이가 좋지 않음) 등의 죄명을 씌워 재물을 약탈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석보(萬石洑)의 개수에 따른 탐학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1893년 12월 농민들은 동학접주 전봉준을 장두(狀頭:여러 사람이 서명한 소장의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 사람)로 삼아 관아에 가서 조병갑에게 진정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쫓겨나고 말았다. 이에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사발통문(沙鉢通文)을 작성하고 거사할 것을 맹약, 드디어 이듬해인 1894년 정월 10일 1,000여 명의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하였다. 이것이 고부민란이다. 농민군이 고부 관아를 습격하자 조병갑은 전주로 도망, 고부읍을 점령한 농민군은 무기고를 파괴하여 무장하고 불법으로 빼앗겼던 세곡(稅穀)을 창고에서 꺼내 농민들에게 돌려 주었다.
이 보고에 접한 정부는 조병갑 등 부패 무능한 관리를 처벌하고 새로 장흥 부사 이용태(李容泰)를 안핵사로 삼고, 용안 현감 박원명(朴源明)을 고부 군수로 임명하여 사태를 조사, 수습하도록 하였다. 이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고부민란에 참여하였던 농민들은 대개 집으로 돌아가고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백산(白山)으로 이동,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핵사로 내려온 이용태가 사태의 모든 책임을 동학교도들에게 돌려 체포와 분탕, 그리고 살해를 일삼는 등 악랄한 행동을 자행하자 이에 격분, 1894년 3월 하순 드디어 인근 각지의 동학접주에게 통문을 보내 보국안민을 위하여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따라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수는 1만 명이 넘었으며, 여기에서 그는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되고 손화중(孫和中)ㆍ김개남(金開南)을 총관령(總管領)으로 삼아 보좌하게 하였다. 그는 4개 항의 행동강령을 내걸고 창의(倡義)의 뜻을 밝혔으며 또한 격문을 작성, 통문으로 각처에 보내어 농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요청하였다. 이로써, 민란은 전반적인 동학농민전쟁으로 전환되었다.
1894년 4월 4일 그가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부안을 점령하고, 전주를 향하여 진격중 황토현(黃土峴)에서 영군(營軍)을 대파하고, 이어서 정읍ㆍ흥덕ㆍ고창을 석권하고 파죽지세로 무장에 진입, 이곳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여기에서 전봉준은 창의문을 발표하여 동학농민이 봉기하게 된 뜻을 재천명하였고, 4월 12일에서 4월 17일 사이에는 영광ㆍ함평ㆍ무안 일대에 진격하고, 4월 24일에는 드디어 장성을 출발, 4월 27일에는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한편, 이보다 앞서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은 정부에 외병차입(外兵借入)을 요청하였고, 결국 정부의 원병요청으로 청국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빙자하여 조선에 들어왔다. 국가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홍계훈의 선무(宣撫:흥분된 민심을 어루만져 가라앉힘)에 일단 응하기로 하고,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을 내놓았는데 이를 홍계훈이 받아들임으로써 양자 사이에는 5월 7일 이른바 전주화약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전라도 각 지방에는 집강소(執綱所)를 두어 폐정의 개혁을 위한 행정관청의 구실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청일전쟁이 일어나 사태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마침내 9월 중순을 전후하여 동학농민군은 항일구국의 기치 아래 다시 봉기하였다. 여기에 그의 휘하의 10만여 명의 남접농민군과 최시형을 받들고 있던 손병희(孫秉熙)휘하의 10만 명의 북접농민군이 합세하여 논산에 집결하였다. 자신의 주력부대 1만여 명을 이끌고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몇 차례의 전투를 거쳐 11월 초 우금치(牛金峙)싸움에서 대패하였고, 나머지 농민군도 금구(金溝)싸움을 마지막으로 일본군과 정부군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그 뒤 전라도 순천 및 황해ㆍ강원도에서 일부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였으나 모두 진압되자 후퇴하여 금구ㆍ원평(院坪)을 거쳐 정읍에 피신하였다가 순창에서 지난날의 부하였던 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져 서울로 압송되고, 재판을 받은 뒤 교수형에 처해졌다.
정읍시 페이지 http://www.jeongeup.go.kr/01k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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