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페트라에 오기 전부터 페트라를 좋아하게 될 줄 알았어.
페트라 보통 이틀을 머물지만 나는 4일을 머물기로 했어. 3일자리 관람권을 구입하면 하루를 덤으로 더 볼 수 있거든.
페트라에 도착한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겨울의 끝무렵있었는데 비로 인해 더욱 춥게 느껴졌지. 호텔 주인장에게 히터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날씨가 좋아서 어제부터 작동을 중지했다고 하네. 나 말고도 다른 여행자들이 히터 이야기를 많이 해서 어쩌면 저녁에 다시 가동할지도 모르겠어. 내일도 흐리면 안 되는데. 만얀 하루 더 비가 온다면 페트라 일정은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야. 나는 페트라를 온전히 화창한 날에 카메라에 담고 싶어.
호텔 응접실은 사랑방 같아.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고 공짜로 건네주는 차를 마시기도 하고. 인디아나 존스를 틀어줘야 하는데 DVD가 고장이래. 사람을 불러서 이래저래 노력해 보더만 결국은 실패했네. 왜 호텔에서 인디아나 존스를 틀어주냐구? 응, 페트라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를 촬영한 곳 중의 하나거든.
따듯한 차 한 잔이 늘 정겨웠다.
그럼 그 협곡처럼 생긴 이상한 길을 마차타고 들어가는 거야? 응,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걸어서 들어갈까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밤에 일찍 잠이 들었어. 요르단도 밤에는 조용한 편이라 11시 이전에 잠을 자게 되네. 아침에는 습관처럼 6시 정도에 눈이 떠졌는데, 커튼 틈 사이로 창 밖을 보니 아직 흐리네. 아마 오늘도 비가 오려나 보다. 마음을 비우고 침대에서 빈둥거렸다. 다시 일어난 시간은 아마 8시쯤 된 것 같아. 창 밖을 보니 완전히 화창한 날씨로 변해있네. 그래서 괜시리 마음만 급했지. 서둘러 아침을 챙겨 먹어야 했으나 어제 저녁에 얼굴을 익힌 호주 사람들이랑 대화가 길어졌어. 오랜만에 들어 본 친근한 호주 영어를 구수하게 쓰는 사람들이라 그랬던 것 같아. 그들도 그날이 페트라 첫날인데 나 때문에 결국 느즈막이 출발하게 된 셈이야.
늦어진 아침 시간 페트라로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어. 호텔에서 유적 입구까지는 차를 태워주거든. 카메라만 챙겨서 나서려는 내게, 호텔 주인장 아저씨 물과 빵을 챙겨준다. 페트라에 들어가면 먹을데도 별로 없고, 레스토랑 음식이 매우 비싸니까 점심으로 챙겨가라는 거야. 고마운 사람. 부엌에 들어가 빵과 치즈를 담아 준다. 그리고 물 한 병도. 이정도면 충분하냐고 내게 계속 확인을 했는데, 빵이 부족하면 어쩌나하고 걱정까지 해주고 있었어. 마음씨 고운 사람.
그는 매표소 앞에서 나와 헤어지며 오후에 약속 시간을 정하고 되돌아 갔어. 매표소에서 3일짜리 입장권을 끊고, 페트라 유적을 행해 걸어들어간다. 나는 내가 그 길을 걸어가며 페트라를 좋아하게 될거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지. (나는 그 길을 4일 동한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번씩 걸었다.)
The Siq.
영어로도 한국어로 번역할 필요없는 페트라 입구의 명칭은 시크.
사람들은 저 길을 걸어들어가며 다들 마음이 들떠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2천년 전의 유적, 거기서 도시락 까먹다.
그 길을 걸어 들어가는데는 30분 정도가 걸려. 좁은 입구 때문에 페트라 유적은 오랜동안 잊혀진 채로 남겨져 있었던지도 몰라. 인류가 만들어 낸 위대한 도시 중에 잊혀진 도시로 남겨졌던 앙코르 왓, 마추 피추와 더불어 페트라는 그 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매력을 선사하게 되는 곳이지. The Siq가 끝나는 곳에는 보물창고가 있다. 누군가의 무덤이었을 곳을 후대에 누군가가 발견하며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았을까 해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네. 페트라가 붉은 장미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는데는 붉은 바위들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보물창고 앞에 서면 자연스레 붉은 장미의 도시라는 명칭을 이해하게 될거야. 특히 아침 시간 태양이 보물창고를 비추고 있는 동안 정말 붉게 변하거든.
요르단 소개 사진으로 등장하는 장면!
보물창고 앞에서 한 참을 서 있었어. 당연히 아름다웠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트라하면 떠올리는 곳이고, 페트라를 안 가본 사람들에게 페트라에는 보물창고 하나 만 있을거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곳이지. 9~10시 사이가 태양이 보물창고에 비추는 시간인데 오늘은 조금 늦었네.
보물창고를 지나면 The Siq가 더 넓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도시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기념품 가게들이 찻집이 보이고 낙타를 타라는 삐끼들을 만나야 하는 걸 보면 여기도 분명 유명 관광지임에는 틀림없어. 어짜피 걸어 다닐 생각이니 호객꾼들에게는 신경 안 쓰기로 했어. 점심도 준비해 왔으니 식당이 어디있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좋다.
낙타 한 마리는 얼마요?
숨겨진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쌩뚱맞은 바위 산들이 가득 해. 정말 쌩뚱 맞은 바위 산들. 그 산들에는 무덤도 있고, 원형 극장도 있어.
본격 시작. 쌩뚱맞은 바위 산들.
원형 극장, 암만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데 이건 로마제국이 건설한 건 아니래. 2천년 전에 페트라를 건설한 네바티안들이 만들어 놓은 것. 역시나 그 곳의 원형 계단을 걸어 올랐어. 모래색 사암이 아니라 붉은색 쌩뚱 바위산을 깍아서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지. 사진을 몇장 찍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피크닉을 온 듯한 요르단 가족들 옆에 앉았어. 스카피를 쓰지 않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예뻤거든. 호텔 주인장 아저씨가 챙겨준 빵과 치즈를 꺼내 여유있게 점심을 그 곳에서 먹었다.
2천년이 흘렸다. 여행자들 더러 챙겨온 점심을 먹는다.
2천년전에 지어 논 원형 극장에서 내가 점심을 먹은 셈이지. 하지만 아이들에게 원형극장은 아주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운동장. 이 곳 아이들에게도 축구의 열풍은 대단해. 아이들은 2천 년에 지어 진 원형극장에서 축구라는 공연을 하고 있었어. 같이 놀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본업인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런 걸 사진이 아니고 그림으로 그려두면 어떨라나?
다음 월드컵은 페트라에서.
페트라 첫 날, 얼마 전진하지 못했다.
일정을 여유있게 잡은 탓이기도 하다.
페트라, 이 곳은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첫 날 직선거리로 걸어서 1시간 걸리는 곳까지만 전진 할 수 있었다.
무덤. 쌩뚱맞은 바위산은 무덤 천지다.
그런데 무덤이 멋있다.
때론 웅장하다. 저길 오후 내내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 삐끼에 붙잡혀 사진을 찍혀야했다.
나는 스카프 쓴 (무슬림 여인) 그 삐끼를 찍고 싶었다.
페트라. 폐허가 된 도시가 있다.
페트라. 삐끼들이 있다.
당나귀 몰던 청년. 내일 타겠다고 했다가 정말 다음 날 그를 다시 만났다.
길. 걸든 낙타를 타든 그건 당신 맘대로...
Life is breads.
페트라 둘째날.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날씨가 아주 좋았거든.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챙겨주는 아침을 먹고.
옆 자리의 일본여행자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호텔 주인장 아저씨한테 아랍 커피도 덤으로 더 달라고 해서 아침을 듬뿍 즐겼어.
빵이 별로인 일본 여행자 내게 빵을 좋아하냐고 의아해하면서 묻는다.
빵은 그들에게 삶이다.
오늘은 점심을 직접 준배해 가기로 했어.
페트라 앞의 마을 와디 무사 Wadi Musa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을 들렸다.
가득한 빵들을 보는 순간 나는 기분이 좋았지.
그런데 빵이 생산되는 걸 보면서 나는 아주 많이 웃었어.
빵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졌거든. 자동생산 시스템이라고 해야하나.
직원들을 빵을 담아 저울에 재서는 봉지에 담고 있었는데,
하도 재미있었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들이 더 재미있어 하던걸.
(카메라 덕분에 나는 그 집에 단번 단골 손님처럼 인지되어 버렸지)
빵을 사고 옆집을 들려 후무스를 한 봉지 포장.
비싸다 싶어 'local price'를 외쳤더니 깍아주네.
점심 준비는 완료됐으니 호텔 주인장이 몰아주는 차를 타고 페트라로 향하면 되네.
오늘은 오후에 늦게 마중나오라고 했어. 어제보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거든.
일몰까지 보고 나오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어두워져있을 것 같아.
언제 걸어도 좋을 그 길, The Siq.
페트라, 둘째날.
어제처럼 기분 좋은 그 길을 다시 걷는다.
오늘은 아주 최적의 시간에 최적의 장소를 가는 셈이야.
The Siq를 걷는 동안에도 보물창고 앞에서 서 있을 때가 가장 좋은 햇빛이 안으로 들어왔지.
언제봐도 좋은 보물창고. The Treasury.
오늘은 당일치기 여행자들이 갈 수 없는 쌩뚱맞은 바위산을 오르는 날.
한시간 정도를 오르면 관광객이 별로 없는 아주 높은 쌩뚱맞은 바위 산의 평평한 곳이 나와.
그 곳 끝자락에 앉아 있으면 기념품 사라고 삐끼들이 다가오지만 금새 손님이 아닌 친구가 되어주지.
스카프를 쓴 무슬림 여인, 그녀가 내 옆에 앉아 말을 걸어오다가 다른 여행자가 오면 잠시 흥정을 하다 다시 돌아온다.
쌩뚱맞은 바위산 꼭대기에서는 또 다른 쌩뚱맞은 바위산과 강물처럼 흐르는 길이 보인다.
더러더러 여행자들도 올라와 경관을 구경하고 사로지고는 했지만 나처럼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삐끼들, 무슬림 여인들과 친해질 수 있었지.
무심코 그들 뒤에 앉았다가 '내 뒤에 앉아 있는건 실례다. 옆에 앉아라'라는 충고를 들어야했고,
뒷 모습이라도 담겠다고 셔터를 눌렀다가 정적을 깨던 소리에
무슬림 여인이 나를 돌아보며 '사진 찍기 전에 허락을 받으라'는 질타를 들어야했어.
그걸 무마해 볼라고 준비해 간 점심을 그녀에게 건넸는데 시큰둥하네.
저걸 언제 다 허락받고 찍어..!#
페트라의 숨겨진 보석
남들은 하루에 다보는 코스를 나는 이틀에 나눠서 본다.
그래도 보너스 하루까지 더하면 앞으로 이틀을 더 볼 수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둘째날 오후는 페트라 유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수도원 The Monastery.
역시나 누군가의 무덤이었을 그 곳은 3세기에 만들어졌데.
수도원이라 부르는 이유는 건물 내부에 십자가 모양의 조각이 남아있기 때문이지.
(무덤 안을 슬쩍 들여다 봤는데 내 눈에는 십자가 모양은 안 보이던걸)
사막이 된 협곡 사이로 800계단을 오른다.
수도원은 페트라 입구에서 보이던 보물창고 The Treasury 보다 더 큰 규모로 지어졌다.
보물창고부터 아무생각없이 쭉 걸어가면 1시간 15분쯤 걸리는 길이야.
더군다나 800계단을 올라야하기 때문에 마치 등산하는 기분도 들지.
가이드 없이 험한 길을 들어가면 위험!
말이나 당나귀를 타지 않겠냐는 삐끼들을 모두 물리치고,
쌩뚱맞은 바위산 사이의 계곡으로 들어간다.
입구에는 가이드 없이 더 이상 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적혀있었지만
개별 여행자들은 가이드 없이 잘도 걸어갔어.
숨이 차기도 했지만 숨겨진 보석을 나는 빨리 보고 싶었다.
거침없이 800계단을 올라 수도원이라 이름 붙여진 건축물 앞에 섰지.
수도원까지 찾아간 걸음이 아깝지 않다.
쌩뚱맞은 바위 산을 깍고 파서 만든 돌덩이는 아름다웠어.
나는 그 앞에서 한 동안 보물을 발견한 탐험가 마냥 즐거워했지.
해가 아직 남았고 에너지도 남았으니 마져 길을 걸어가 볼까.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쌩뚱맞은 산의 정상까지 가는 셈이지.
조금 더 힘내자. 쌩뚱맞은 산 너머에 뭐가 있을까?
해발 1,080m.
그 곳에서는 쌩뚱맞은 산을 지나 저멀리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전망대에도 어김없이 기념품 장사꾼이 있었는데 몰래 그의 사진을 찍다가 또 혼나야 했고,
사진 몇장찍고 바삐 사라지는 단체 관광객들을 조롱하듯,
쌩뚱맞은 바위에 들어누워 책을 펴든 유럽 여행자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어.
쌩뚱맞은 산 너머에서 역시 쌩뚱맞은 산?
나? 나는 어땧냐고?
글세.. 사진을 찍느라 바빴겠지.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볼 여유는 가진 사람이라니까.
노을이 질 때까지 머물 수는 없었지만, 늦은 오후 시간까지 머물고 싶었어.
호텔 주인장에게 느즈막히 픽업하러 와 달라고 약속을 정했거든.
다시 수도원 앞으로 가서는 바위에 걸터 앉았다.
베두인들이 만든 찻집도 있었지만 그냥 홀로이 페트라의 숨겨진 보석을 바라보고 싶었거든.
더 붉게, 더 진하게 빛나길 바랬다.
해가지고 아무도 없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우면 그 곳에서 살고 있을 베두인들 텐트에서 하루를 재워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뒷 이야기.
1. 두 명의 일본 여행자
그 날 수도원까지 가는 길에서 이목을 집중 시켰던 두 명의 일본 여행자. 딱 봐도 '나 일본인' 이렇게 써 있다. (요르단 사람이 보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감이 없을 확율이 더 높다) 내가 그들은 목격한 건 Siq를 걸어들어가면서부터였는데, 그들 손에는 커다른 여행 트렁크가 들려있었다. 배낭도 아니고 커다란 트렁크다. 길이 그러니 그걸 끌고 갈 수도 없어서 한 손으로 들고 다니고 있던 상황. 처음 봤을 때 시간이 없어서 페트라를 서둘러 보려는 것일꺼라 생각했다. 어디 다른 도시에서 와서 다른 도시로 가기 전에 페트라를 반나절 정도 들리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을 했던 것. 그런데 그들은 내가 오후에 수도원을 오르는 800계단 입구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수도원까지 그 시간에 주파한 것이다. 어의없던 상황. 내가 그들에게 뭐라 물어볼 껀덕지도 없이 그들은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워낙 남들 안하는 걸 시도하는 일본 여행자가 많으니 '드렁크 들고 페트라 여행하기. 뭐 그런 이벤트 하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넘겨버렸다.
그들의 사연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며칠이 지나 페트라에서 와디 룸 Wadi Rum 가던 길. 동행이 되었던 네델란드 여행자(그는 나보다 호기심이 더 많다)도 두 명의 일본 여행자가 신기했던지 그들에게 왜 트렁크 들고 다니냐고 직접 물어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호텔 체크 아웃을 했는데 마땅이 짐을 보관할데가 없어서 그냥 들고 나왔다'라고 했다는 것. 무겁지 않냐는 물음에 '어, 정말 무거운데'라고 싱겁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더란다.
2. 가이드 잘 하게 생긴 호텔 매니져
숙소에 돌아와 그럭저럭 친해준 매니져랑 대화가 길어졌다. 건장한 체구의 그 녀석은 이태리에서 유학했다고 했고 고향인 페트라에 머물면서 영어, 이태리어 가이드를 심심풀이로 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너 가이드 잘 하게 생겼다'라고 건넨 말이 시발이 되어 그와 대화가 길어졌고,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완전 허물없는 사이가 되기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그가 가진 카리스마가 있었음을 밝힌다.) 그는 그날 반나절 미국인 2명을 데리고 가이드를 하고 있었고, 페트라 유적에서 나와 한 번 마주치기도 했다. '미국 여행자들은 페트라가 보물창고 The Treasury가 전부인줄 알고 페트라를 찾아온다'고 그가 반나절 투어를 끝내고 나서 내게 건넨 말이다. 반나절 동안 수도원까지는 갈 수 없었을 터. 페트라를 소개하는 모든 책자에 보물창고가 대표사진으로 등장하니 사람들에게 페트라는 보물창고라는 답안이 성립되어있을 것이다. 수도원까지 다녀온 나로서는 보물창고만 보고 페트라를 지나치는 여행자들에게 아쉬움이 남기 마련. 그렇다면 '보물창고와 수도원의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보물창고가 산 속 깊이 숨겨있다고 하면 시간이 없더라도 힘들더라고 애써 페트라를 끝까지 다 보려하지 않을까?' '그리고 수도원 보다 보물창고가 이름에서 웬지 모를 호기심을 더 유발하잔아. 어때?'
혼자 유유히 보물창고와 페트라를 전부 갖고 있었던거야.
페트라를 여행하는 가장 적절한 시간은 이틀.
수도원까지 어이지는 주요한 볼거리와
한 두 개 정도의 쌩뚱맞은 바위 산 하이킹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의 시간.
페트라 3일차.
오늘은 반나절만 둘러보고 나올거야.
그런데 오늘 가야 하는 쌩뚱맞은 산을 오르는 코스는 시간 안배를 잘 해야해.
왜냐면 보물창고 The Treasury가 내려다 보이는 쌩뚱맞은 산을 오를 거니까.
8:20분 보물창고. 1/4 정도 빛이 들어왔다.
보물창고에 빛이 들어오는 시간은 9:00~10:30분 정도 사이.
보물창고 앞에서 보물창고가 내려다 보이는 쌩뚱맞은 산 Above The Treasury을 오르는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
호텔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먹고, 가장 먼저 페트라 유적으로 출발했다.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왔으니까.
천천히 걸어가면 사진찍기 최적의 시간을 놓칠 것 같아 페트라 입구부터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어.
The Siq의 아름다움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보물창고까지 직행을 했고,
보물창고 앞에서 잠깐 눈길을 두 번 주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야했어.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풍경은 훌륭해진다.
보물창고가 보이는 쌩뚱맞은 바위산까지 오르는 길은 이번에도 돌 계단이 많았다.
무덤이 가득한 바위산을 오르는 셈이고,
어제 아침에 올랐던 쌩뚱맞은 산과 반대 방향의 산을 오르는 셈이지.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탁트힌 풍경이 보일 때는 발걸음을 멈춰야했어.
숨이 차서 물도 마셔야 했거든.
산 아래 원형 극장도 보이고,
병품처럼 펼쳐진 쌩뚱맞은 산들로 향하는 물줄기같은 길이 그림처럼 펼쳐져있었다.
보물창고가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는 바위 산 정상에서
길이 없는 길을 따라 10여분 정도 내려가야했는데,
언제쯤 보물창고가 보일까 조마조마하는 모습이 마치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지.
탐험가가 페트라를 발견할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보인다. 보물창고가 보인다.
바위 산들 사이로 보물창고가 내려다 보이던 순간,
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과 같은 기분을 느껴.
페트라 유적 입구부터 쉬지 않고 걸어 1시간 20분이 걸렸고,
오전 9:30분에 가장 좋은 빛을 받고 있던 보물창고를 내려다 보게 된 셈이지.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어.
혼자 유유히 보물창고와 페트라를 전부 갖고 있었던거야.
신발은 고생했고,
보물창고는 붉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인간들은 슬슬 밀려오기 시작했다.
보물창고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바위까지 걸어가 절벽에 걸터 앉았다.
그대로 바위 절벽에 누워 아침 햇살을 온 몸으로 받기도 했고,
산 아래 보물창고 앞에서 얼쩡대던 관광객들에게
마치 인간들 세상을 내려다보는 절대자처럼 행동하기도 했지.
산 아래 관광객 중에는 가끔 산 위를 올려다보다
나를 발견하고는 자기들끼리 숙떡대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기분이 좋던 걸.
고고학자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고 사진작가도 아니지만
그런 풍경을 혼자 독식할 수 있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오늘은 반나절만 페트라에 머물기로 했으니, 딱 한 군데만 볼 작정이었으니,
보물창고가 내려다 보이던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다.
내려 오던 길 몇 명의 여행자가 산 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 중 유독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어.
다름 아니라 'Beer Lao' 티셔츠를 입고 있었거든.
라오스를 같이 여행한 것도 아니면서 괜시리 그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또 기분이 좋아졌지.
페트라 붉게 물든다.
페트라에서 일몰을 보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딜까?
일몰을 보고 나면 어두워진 산길은 어떻게 내려오지?
페트라 유적 관람이 가능한 시간은 언제까지였던가?
캠핑은 안 된다고 했지만 그냥 밤새 머무는 건 가능할까?
페트라가 붉게 물들었다.
저녁 시간에 페트라 유적에서 마을인 와디 무사 Wadi Musa로 돌아오던 길 페트라를 붉게 물들고 있었다.
페트라 3일차. 오전만 유적에 머물렀으니 오후는 와디 무사를 취재해야 했다.
셋째날 일정 중에 마음 속에 두고 있던 것은 일몰을 관람하는 것.
와디 무사 언덕 어딘가에 오르면 페트라의 쌩뚱맞은 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호텔 옥상에서도 페트라가 붉게 물드는 걸 볼 수 있었지만 높이가 낮았다.
오후 호텔 뒤쪽으로 연결된 언덕 길을 오른다.
도로는 포장되어 있고, 도로 양 옆으로는 건물들과 호텔들이 만들어져있다.
페트라로 들어오던 날 봤던 와디 무사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같은 곳은 걸어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언덕 뒤편 꼭대기까지 올라야했던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했다.
호텔 옥상 어딘가 좋아보이는 곳이 있었지만, 그 곳을 지나 더 뒤쪽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다른 건물에 가려 오히려 시계가 제한을 받았기에, 다시 길을 내려온다.
도로 앞쪽의 건물들은 현지인들이 사는 가정집들이다.
이방인을 내치지 않는 사람들이니 어느 집 하나를 작정하고 들어가면 순수히 옥상을 내 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방인을 주시하던 동네 아이들이 나를 이끈다.
쌩뚱맞은 산들의 절정판
3일 입장권으로 보너스 하루가 주어진다.
페트라 3일 입장권은 31Dinar. (환율 1달러=0.7Dinar)
40달러가 넘는 셈이다.
그러나 충분히 그만한 가치를 한다.
보너스로 하루가 주어졌다.
비싼 돈을 내고 유적을 관람하는 것이었음에도 웬지 공짜로 하루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쌩뚱맞은 산들의 절정판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
산의 이름은 움 알 비야라 Umm Al-Biyara. 높이는 1,178m.
보물창고부터 걸어가면 왕복 3~4시간이 걸리는 길이지.
하지만 쌩뚱맞은 정상에 서면 페트라가 완전히 제압되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
페트라 3일째 되던 날 아침부터 서둘렀으니, 보너스로 얻은 4일째는 천천히 출발하기로 했어.
움 알 비야라는 오후에 가야 분위기가 좋다고 하네.
한 낮의 보물창고는 이런 빛이다.
페트라를 3일동안이나 들락거렸으니 어떤 산을 올라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입구를 찾기가 아주 힘들었어.
길을 지나쳤다가 그 곳에 사는 베두인 꼬마의 도움을 받고서야 입구에 들어설 수 있었지.
머리에 때가 득지득지했던 꼬맹이는 사설 가이드라도 해주겠다며
길을 따라오려 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
그는 대가로 팁을 바랬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사양심을 조장해주고 싶지 않았거든.
대신 점심으로 준비해 간 후무스와 빵을 아이와 함께 먹어 주었다.
아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데 나도 기분이 좋아지더라.
길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입구는 찾기 어려웠지만 길을 알아내면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오늘도 다시 계단을 따라 쌩뚱맞은 산을 오르는 셈이군.
매일 하나씩 산을 오르지만 힘겨운 만큼 정상에 서면 기분은 좋다.
쌩뚱맞은 바위 산과 계단들의 향연은 오늘도 계속된다.
... 계속 오른다.
산 길은 숨이 차왔어. 지금까지 산 중에 가장 높은 곳을 오르는 길이니까.
이번에도 정상까지 단숨에 올랐는데, 정상 부분의 평평한 분지처럼 생겼네.
그 곳에서의 바람.
분명 이상한 행성의 표면을 걸어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그 곳에서의 바람 덕분에 내가 깨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
움 알 바야라..움 알 바야라...
이상한 행성의 표면은 사막 같기도 했어.
더 오를 곳이 없을 것 같던 이상한 행성의 표면을 따라 끝까지 걸어들어갔지.
가까이에 쌩뚱맞은 산들이 360도로 펼쳐진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면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고 미션 임파서블 2가 생각날까?
쌩뚱맞은 바위 산의 정상에서 낙하산 하나 차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여기저기 뛰어다며 절벽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도 그렇게 오래 머물고 싶었어.
아무도 올라 올 것 같지 않던 곳.
아무 곳에나 들어 누웠다.
바람과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
그렇게 얼마를 머물렀던 것일까?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어.
페트라 4일의 기억을 아쉬움을 남기면서.
페트라 유적을 되돌아 나가던 길, 눈도장을 찍었던 모든 곳에 한번씩 더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물창고 앞에 서서 진한 아쉬움을 되내인다.
페트라, 잊혀진 장미의 도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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