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주단을 깔아줘서 사람과 개와 소와 말과 소라, 고동이 입국카드를 쾅쾅찍는 그런 나라말고, 이름은 들어봤으나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라를 우리는 간다네. 이름하여 <오지‘s 월드>. 미리 만나보는 오지의 나라, 언젠가는 내 발자국이 찍힐 오지’s 월드. |
모두들 안녕? 지난 회에 말한 것과 같이 오늘이 이 기획의 마지막 시간이야. 마지막이니까 뭔가 알차고 재미있는 내용들을 담으려고.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두루두루 살펴봤는데, 마땅한 나라가 없더라고. 사실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게 국가보다는 부족을 중심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아. 그래서 나라보다는 부족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또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이 있겠지만, 아직 개발된 것이 별로 없어서 소개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많더라고. 그래서 마지막을 장식할 나라는 이집트가 되었어. 그 광대한 역사 때문에 엄두가 안 나서 피해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네.
이집트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야. 피라미드, 파라오, 태양신. 여러 영화를 통해 이집트의 풍경을 만나 본 사람도 많을 것 같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관광 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찍부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를 방문하고 있지.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 봐야 할 것 같은 나라. 이집트를 우리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해.
이집트의 국기 저 독수리는 대머리 독수리일까 아닐까
이집트는 아프리카의 북동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어. 아프리카와 중동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아프리카와 중동을 이어주는 이집트
정식명칭은 이집트 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그래 이집트 역시 이슬람 국가야. 국민 대다수가 이집트인이고, 또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고 있어. 북동쪽 중동 지역에 이스라엘과 요르단 등이 위치하고 있고, 홍해 바다 건너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지. 서쪽 아프리카 쪽으로는 우리가 전에 공부했던 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쪽으로는 수단이 있어. 북쪽에는 지중해가 있고, 지중해 건너 터키, 그리스 등의 나라들이 있어. 중동 쪽에 이집트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 반도가 있다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지.
지난 번 리비아를 공부할 때 봤던 사하라 사막 지도 한번 더 볼까?
사하라 사막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이집트도 국토의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이야. 하지만 리비아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지.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나일강이야. 이집트 상세 지도를 한 번 보자구.
이집트 지도
중요한 도시들이 거의 대부분 나일강을 따라서 위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프리카 내륙 쪽이 나일강의 상류이고, 지중해 쪽이 나일강 하류라는 거야. 즉 지도의 아스완, 룩소르 같은 곳이 이집트 내에서는 나일강 상류이고, 기자, 카이로 지역은 하류라는 이야기지. 수단에서 흘러 들어온 나일강은 북쪽으로 흘러서 카이로를 지난 후에 갈라지면서 지중해 부근에 비옥한 삼각주 지역을 만들지. 나일강은 고대부터 이집트와 아프리카 내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의 역할을 했어. 배를 타고 갈 수 있는데, 굳이 힘들여 사하라 사막을 통과해 갈 필요는 없었겠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그러니까 B.C 4,000 년 경에 이집트는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로 나뉘어져 있었어. 나일강을 설명하면서 이야기 했듯이, 지중해 쪽이 하이집트이고, 사하라 사막쪽이 상이집트 였어. 상, 하를 나누는 기준이 나일강이었던 것이지. 그만큼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존재는 절대적이었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상이집트 보다는 하이집트가 좀 살기가 좋았어. 하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었고, 상이집트는 나일강변을 따라서 좁고 긴 지역에서 살고 있었지.
지금의 사하라 사막 지역이 예전부터 사막은 아니었다고 해. 그 당시에 상이집트 사람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어 가고 있었고, 하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이 매년 아프리카의 내륙으로부터 가져오는 기름진 흙 덕분에 농사도 잘 되고, 바다나 육지를 통해 다른 이민족과도 교류를 하며 사는 그런 상황이었지. 그래서 상이집트 사람들이 엄청 열 받은 거야. 원래 티격태격 하는 사이였지만, 사막화가 심해지자 이판사판 이라는 마음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기원전 3,000년경에 상이집트의 나르메르 왕이 상, 하이집트를 통일하게 돼. 이집트 최초의 통일 왕국이야. 이 때 부터 이집트의 제1왕조가 시작되지. 제1왕조, 제2왕조 시기에 이집트는 왕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가게 돼. 이 시기에 정부 조직과 행정 체계를 세우게 되고, 건축, 토목, 예술 등의 분야에서 발전을 이룩하지.
이집트를 생각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 피라미드일거야. 피라미드를 제일 먼저 만든 것은 기원전 약 2800년경 제3왕조의 2대 군주 조세르였어. 현재 이집트에는 약 70여개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제4왕조의 2대 왕인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지. 수도인 카이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자라는 지역에 있어. 만들 때는 147m 정도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파손되어서 높이가 137m라고 해. 평균 무게 2.5t의 석재 230만개를 쌓아올려 만들었다고 하네. 137m면, 4m가 한 층인 건물로 쳐서 35층 건물정도 되겠네. 생각만큼 높지는 않지? 그래서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갔다가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
피라미드의 높이
쿠푸왕이 다스리던 제4왕조와 그 뒤에 이어지는 제5왕조 시절에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인 파라오의 왕권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이야. 그들은 자연의 신이었다가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된 오시리스나 태양신 라의 아들로 인정받으면서 이집트 왕국에서 신적인 추앙을 받았지.
제5왕조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왕권은 그 후 오랜 세월동안 힘을 잃고 말아. 그 후 제11왕조와 제12왕조에 다시 한 번 이집트의 황금기를 맞이해. 이 시기에 이집트는 아시아인들과 통상 외교의 폭을 넓히게 되지. 이 때 부터 이집트 땅에 와서 정착하고 살아가던 아시아인들이, 이후에 이집트를 지배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세력을 힉소스라고 불렀어. 제16왕조와 제17왕조는 아시아인들의 왕조였어.
이집트의 룩소르를 여행할 때 가게 되는 곳 중의 하나가 왕가의 계곡이야. 이 곳은 힉소스의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 이집트 왕가를 세운 제18왕조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야. 이집트의 모든 왕들이 미라미드를 세운 건 아니라는 말씀이지. 왕가의 계곡은 1922년에 발굴되었는데, 투탕카멘의 가면 등 화려한 부장품들이 출토되었어. 투탕카멘은 이집트 역사를 보면 그다지 강력한 왕도 아니었는데, 도굴된 다른 왕들의 무덤은 얼마나 더 화려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그 뒤 제20왕조까지 평안하던 이집트는 그 후로 혼돈기를 겪으며, 리비아인, 에티오피아인,앗시리아인, 페르시아인 등의 침략과 지배를 받게 돼.
기원전 332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이집트로 진군하게 돼. 이집트 사람들은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여기고 기뻐했지. 그는 지중해 연안에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만들었고, 이 항구 도시는 이집트 최대의 도시로 발전하게 돼. 알렉산더가 떠난 뒤 이집트는 마케도니아 인들이 다스리게 되는데,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진 못했지만 300년 이상 이집트를 다스리게 돼.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바로 이 마케도니아 인들의 후손이고, 이집트가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이집트를 다스리던 권력자였어. 그녀가 죽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지. 그 이후는 우리가 이미 여러 번 공부한 것과 비슷한 패턴이야. 로마-동로마-이슬람-오스만투르크-세계대전-영국의 순서지.
각 여행지를 이제부터 살펴볼까?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이고, 아랍권과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가장 큰 도시야.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나르메르 왕이 수도로 정했던 멤피스도 카이로 부근이었지.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주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카이로. 특히나 이 곳에 있는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들을 상당수 만나볼 수 있어
기자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이집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야. 기자는 뭐니뭐니 해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 피라미드 중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해.
기자 지역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내부로도 들어 갈 수 있는데, 당연히 입장료가 있어. 피라미드 내부는 마치 결혼처럼 ‘들어가 봐도 후회, 안 들어가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고 해. 거기까지 가서 안 들어가자니 너무 서운하고, 그래서 덥고 좁은 통로를 따라 애써서 들어가보면 석관 하나만 덜렁 있기 때문이래.
피라미드와 작별하고 나면 당연히 다음 순서는 스핑크스겠지. 이집트에 가기 전에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함께 있는 사진을 많이 봤기 때문에 거대한 스핑크스가 피라미드 바로 옆에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스핑크스 형아는 피라미드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이고, 또 피라미드에서 몇 백 미터 떨어져 있다고 해. 여기저기 부서진 얼굴과 비교하면 몸통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인데, 그 이유는 오랜 시간동안 몸통이 모래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
코에 한 방 맞으신 스핑크스 형님
아시아 세력인 힉소스를 몰아내고 세워진 제18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의 시기를 이집트 신(新)왕국시대라고 불러. 이 시기에 제18왕조의 아멘호텝 4세는 수도를 중부 이집트의 테베로 옮겼어.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km정도 떨어진 룩소르는 이 테베 지역과 가까운 도시였어. 그래서 룩소르에서는 신왕국시대의 유물과 건축물들을 많이 만나 볼 수가 있지.
<왕가의 계곡>
왕가의 계곡은 신황국 시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들어진 곳이야. 뭐 일종의 왕가를 위한 공동 묘지 라고 할 수 있겠지. 아마도 도굴을 피하기 위해 피라미드 양식을 피하고 이 곳에 암굴로 된 묘소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묘소들이 도굴을 당했어. 단 하나 1922년에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만이 원상태로 남아 있었다고 해. 그래서 투탕카멘이 그렇게 유명해진거야.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
하트셉수트는 제18왕조 때의 여왕으로 이집트 최초의 여왕으로 기록되고 있어. 당시 이집트인들은 남자만이 파라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가짜 수염을 달고 남장을 하고 다녔다고 해. 투트모세 1세의 딸이었던 하트셉수트는 이복동생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을 해. 그의 어머니가 후궁이었기 때문에 왕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지기 위해 하트셉수트와 결혼을 한 거지. 투트모세 2세는 후궁으로부터 투트모세 3세를 얻게 되는데, 이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지. 세자가 아직 어려서 아직 나라를 다스리기는 힘이 들었고, 그래서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가 공동으로 집정을 하게 돼. 그러다가 하트셉수트가 파라오에 오르면서 그녀는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 되지. 그녀는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를 위해 신전을 지었고, 직접 제사장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해. 그리고 후에 이 건물은 여왕의 무덤으로 쓰이게 되지.
하트셉수트 여왕의 신전
<멤논의 거상>
원래 이곳은 제18왕조의 아멘호텝 3세의 신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신전은 모두 파괴되고 그 신전을 지키던 두개의 거상만이 남아있어.
멤논의 거상
<카르낙 신전>
앞에서 이집트의 수도가 테베로 이동했다고 이야기했지? 수도가 바뀌면서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신도 바뀌게 되었어.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신은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오시리스'나 태양인신 '라' 였어. 그러다가 테베 지역이 이집트의 중심이 되면서 테베의 신인 '아문' 이 이집트의 가장 중요한 신으로 바뀌게 되지. 태양신인 '라'와 결합하여 ‘아문-라' 신으로 숭배받기도 했어. 신왕국시대의 파라오들은 자신의 이름을 '아멘헤네트(아문신은 나아간다는 뜻)', '아멘호텝'(아문신은 만족한다는 뜻) 등으로 바꾸며 아문신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지. 카르낙 신전은 바로 아문신을 섬기던 대 신전이야. 나라의 가장 중요한 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이니 그 규모도 당대 최고였겠지.
카르낙 신전 입구의 조각상들
카르낙 신전은 134개나 되는 큰 기둥이 늘어서 있는 대열주실, 하트셉수트 여왕과 그녀의 아버지인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 등으로도 유명해. 그리고 매일 빛과 소리의 쇼가 진행된다고 해. 빛과 소리로 신전을 안내하는 거지. 카르낙 신전은 이후에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 사원으로도 사용되었어. 그러한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룩소르 신전 >
룩소르 신전 역시 테베의 신이자 이집트 최고의 신인 아문신을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야. 원래는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해. 후에 람세스 2세에 의해 증축이 되어서 곳곳에 람세스 2세의 흔적이 많은 신전이야.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제19왕조의 3대 왕이야. 그는 이집트에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고, 중동 지역에 있던 또 다른 강력한 제국인 히타이트와는 화친을 맺어서 평화로운 이집트를 다스린 것으로 유명해.
룩소르 신전 입구
아스완은 예로부터 이집트와 아프리카 내륙을 이어주는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어. 룩소르 보다는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 온 곳에 위치하고 있지. 나일강의 치수를 위해 만들어진 아스완 댐으로도 유명해.
<아부심벨의 신전>
제19왕조의 강력한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가 지은 신전이야. 이 신전은 원래의 위치보다 70m 정도 위로 이사를 했어. 이집트에서 아스완 댐을 만들었는데, 그러면서 수위가 높아져 이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한 거야. 그래서 유네스코가 국제 사회에 동참을 요청했어. 이 중요한 문화유산을 지키자고 말이야. 50여 국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간단해. 신전을 위로 옮기는 거지. 그들은 석조물을 1천 개 이상으로 절단한 후에 그 조각을 위로 이동시키고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고 해.
죽다가 살아난 아부심벨의 신전
<미완의 오벨리스크>
여기는 채석장이야. 이 곳 에서는 미완성을 오벨리스크를 볼 수가 있지. 완성되기 전의 작품들을 보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건축과 조각을 했었는지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지야.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인 '라'를 의미해. 신왕국 시대의 왕들도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앞에서 소개한 카르낙 신전에서 이 오벨리스크를 만날 수 있지. 상당수가 해외로 유출이 되었는데, 프랑스 파리의 콩코드 광장, 워싱턴 D.C, 런던 등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볼 수가 있어.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홍해 바다가 유명해. 후루가다는 이집트 홍해 연안에서 가장 큰 해변 휴양 도시야.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 후루가다를 찾아 와. 특히나 유럽 여행객들이 많다고 하네.
후루가다
엘구나는 후루가다 근처에 있는 20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인데,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물들로 유명한 곳이야.
엘구나
다합은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서 다이버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야. 이집트의 중동 쪽 영토인 시나이 반도에 있는 곳이지. 후루가다의 물가가 부담스러운 여행자들이 마음 편히 다이빙을 즐기는 곳이야. 이 곳 에서 배를 타고 요르단으로 입국하는 것도 가능해서 이집트 여행을 마친 여행자들이 요르단으로 넘어가기 전에 머무르는 마지막 도시가 되기도 하지.
다합 해변
그 외에 알렉산더 대제가 건설한 이집트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도 있어. 이 곳 에서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가 있지.
자! 이렇게 열 번의 연재가 끝이 났네. 개인적으로는 내가 여행하고 싶은 나라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어. 그리고 역시 공부한 만큼 더 잘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세상은 넓고 내가 가야 할 나라들은 많은 것 같아. 지금까지 허접한 글 읽어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기면 다른 이야기로 만나기로 해. 그럼 안녕!!
노매드 다구간 항공 전담팀 : 756-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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