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만두에 도착했다. 2박 3일, 37시간을 넘는 시간을 타고.
#1. 인도 실리구리를 나오다.
모든 여행의 출발은 숙소에서 나오면서부터.
인도 실리구리의 짧은 침대에서 웅크려 자고 나온 시간은 오전 9시.
(이때부터 계산해 보니 43시간이다)
합승 지프 정류장으로 가 카카르비타(네팔 국경)로 언제 가느냐니 15분 기다리라고 한다.
'30분은 걸리겠군.'
50분 후, 같이 타고 갈 다른 손님이 온다. 네팔리로 보인다.
순번에 밀려선지 10명을 채우지 않은 지프가 출발한다.
잠시 후, 주유소에서 차비를 걷는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차비를 걷으면 찜찜해진다.
기사 왈, 10명을 못 채웠다며 10루피를 더 달라고 한다.
원래 요금이 50루피니까 20% 인상이다. 일단 거절한다.
"너 아까 50루피라고 했잖아."
영어를 잘 못하는 기사는 두어 번 더 채근하더니 뭐라고 투덜대며 물러난다.
순간 후환이 두려워진다. 조금 더 세게 나오면 주려고 했건만.
지프가 허름한 인도 입출국 사무소에 멈추자 기사가 지붕에 올린 내 배낭을 내리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기서 짐 검사를 하나?'
아뿔싸! 그대로 지프가 가 버린다.
당한 것이다. 10루피 안 줬다고 3km 정도 되는 까까르비타까지 태우지 않고 가 버린다.
수속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데려다준다고 들었는데...
방글라데시 테니스 팀이 단체로 출국 절차를 밟느라 제법 기다려 도장을 찍고 걸어서 네팔로 간다.
#2. 카카르비타에서 버스를 타다.
네팔 입출국 사무소에 가니 이번엔 일본인 단체가 출국 수속을 밟느라 분주하다.
한참 기다려 비자피에 대한 설명을 듣고 30일 비자를 산다.
30일 40USD+100인도 루피, 40일 100USD.
비자 룰이 모두 바뀌었다. 40일 비자는 너무 비싸 고민을 한다. 연장할 때 연장하더라도 일단 30일 비자를 산다.
은행에 가서 인도 루피를 네팔 루피로 바꾸고(1:1.6),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그때 시간이 오후 12시 30분경(네팔이 인도보다 15분 빠르다).
오후 3시에 출발한다는 버스표를 산다.
"얼마나 걸려?"
"24시간 정도?"
"정도? 너도 잘 몰라?"
지난 여름 홍수로 댐이 무너져 길이 망가졌고, 이 버스는 인도를 거쳐 카투만두로 간다고, 얼마나 걸릴지는 가봐야 안다고 한다.
"인도를 거친다고? 이봐, 난 오늘 인도에서 나와 방금 네팔 비자를 받았다고."
만병통치 단어가 또 나온다.
"No Problem!"
식당에서 달밧(네팔 정식)을 시켜 양껏 먹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시간을 때운다.
(네팔의 달밧이나 인도의 탈리는 거의 같은 메뉴다. 제한과 무제한이 있는데, 무제한은 조금 비싼 대신 밥이든 반찬이든 달라는 대로 계속 준다.)
#3. 버스를 움직이는 사람들.
기특하게 정각에 터미널을 나온 버스는 역시나 30분만에 멈춘다.
출발할 때 버스 안에는 손님 2명이, 버스 지붕 위에는 사탕수수와 서랍장과 의자와 선풍기와 이불 등이 잔뜩 실려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많이 탄다. 대개 젊은 친구들이다.
닭들도 2개의 바구니에 나눠 담겨 통로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 손님도 태울 만큼 태웠으니 본격적으로 달리는구나 생각하는데 또 멈춘다.
손님을 더 태우나 했더니 아니다. 자기들 간식 시간이다.
여기서 자기들은 버스 한 대를 움직이기 위한 스텝들.
운전기사 2명, 정비사 1명, 경리 1명. 모두 남자다.
왜 경리냐고? 이 사람이 티켓, 주유소, 통행료, 스텝 간식 등 돈과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한다.
다시 출발. 그러나 가다서다 가다서다...
#4. 하루에 2번 인도 국경을 넘다.
오후 8시경 인도 국경에 도착한다. 비하르 주 Jogbani.
알고 보니 외국인은 나 말고 20대 초반의 서양 여자가 한 명 더 있다.
(이 친구는 네팔 총각들의 관심 대상이 되어 버스 여행 내내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네팔 사무소는 들르지 않고 바로 인도 입출국 사무소로 가더니 입출국 카드를 쓰라고 한다.
정전이어서 사무소에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담당자는 자다가 일어나 촛불을 켜고 업무처리를 한다.
다시 설명한다. 오늘 인도를 나와 네팔 비자를 받아 들어왔다고.
"No Problem!"
그 말 할 줄 알았다.
따라다니면서 보니 여권에 도장을 찍진 않고 입출국 카드에만 도장을 찍어 확인한다.
사실 담당자들도 잘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묻고 확인하며 왔다갔다 한다.
외국인에게 열려 있지 않은 국경이라 확인만 하나 보다.
#5. 여기가 인도야, 네팔이야?
버스는 계속 가다서다 하고 나는 졸다 깨다 한다.
오후 11시 넘어 휴게소에 도착한다.
식당도 있고, 화장실(특히 여성용)도 있고, 노점도 있고, 주차할 공간도 있는 곳이 휴게소다.
짜파티나 라이스를 주로 먹는다.
휴게소에 들를지 몰라 버스가 서는 대로 이것저것 사먹은 덕에 배가 고프진 않다.
그래도 과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 보니 12루피. 돈을 주니 인도 루피로 달라고 한다.
'어, 인도 루피로 바가지 씌우려고?'
안 산다고 물러서는데 문득 드는 생각. 옆 사람에게 물어 보니 아직 인도란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네팔 루피를 준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 인도 5루피로 짜이만 한잔 마신다.
#6. 닭은 닭이다.
새벽 4시, 버스가 다시 멈춘다.
정비사가 버스 아래로 들어가 짤그락거리며 뭔가를 만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해 버스에서 내려 담배를 피워 물고 하늘을 본다.
은하수까지는 아니어도 별이 많다. 별자리로 보이는 별들도 보이지만 별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밝은 별들을 이어 내 맘대로 모양을 만들어 본다.
"꼬끼오!"
느닷없이 버스 안에서 닭이 운다.
'비록 바구니에 담겨 버스 통로에 실려 가더라도 나는 닭이다.
새벽이 오니 나는 운다. 닭대가리라고 함부로 욕하지 마라.
그래도 나는 내가 닭인 사실을 안다. 너는 누구냐?'
물론 내 생각이다.
자는 줄 알았던 네팔리들이 모두 웃으며 한 마디씩 한다.
"저놈이 닭은 닭이구나, 하하하!"
"흐흐흐, 그럼 닭은 닭이지."
"어이, 떠드는 당신은 누구야?"
물론 이것도 내 생각이다. 따지지 말라.
#7. 네팔 국경을 넘어.
날이 밝고 버스가 네팔로 들어간다.
네팔 군인 2명이 버스에 타 간단한 검문을 한다.
나는 네팔리로 보였는지 그냥 넘어가고, 서양녀만 여권 검사를 받는다.
그곳 국경에는 이재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거나 움막을 짓고 모여 살고 있다.
버스 안의 네팔리들도 이곳을 지나는 동안은 조용하다.
#8. Party for tired tires.
여전히 버스는 가다서다 가다서다 가다서다......
사람들은 밥 먹고, 간식 먹고, 차 마시고, 간식 먹고......
오후 3시 50분, 버스가 설 때마다 타이어 점검을 했는데도 기어이 펑크가 나고 만다.
꼴을 보니 여기까지 온 것만도 장하다고 타이어에게 말해 주고 싶을 정도다.
오른쪽 뒷바퀴 2개 모두 아슬아슬하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가까운 수리점에 들른다.
타이어를 풀고 점검하고 다시 끼워 출발하더니 10여 분을 달려 다른 수리점에 선다.
타이어를 풀고 점검하고 고치고 바꾸고 해서 2시간에 걸쳐 수리 완료.
버스가 출발하자 환호성이 일어난다. 음악을 틀고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그 사이에 동네 주점에서 술을 몇 잔 걸친 서너 명이 주도를 한다.
닭들도 좁은 바구니에서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꼬꼬거린다.
옆자리에 앉은 네팔리가 묻는다.
"쟤들은 지금 아주 행복해하고 있어. 너는 어때?"
"응, 나도 행복해. 하지만 빨리 카투만두에 도착했으면 좋겠어."
"그럼 행복하지 않은 거네? 걱정이 없어야 행복한 거야."
이건 실화다. 길 위에서 또 한수 배운다.
#9. 무글링에서의 깨달음.
오후 7시 30분, 무글링에 도착해 저녁을 먹는다.
이제 카투만두에 다 왔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니 90km를 더 가야 한다.
거리를 알아도 의미가 없다. 예상 시간을 포기한 지 오래다.
시간과 공간은 모두 기사 마음이다.
시간과 공간을 움직이는 운전기사, 멋진 직업이다.
식사 대신 술을 마시는 네팔리들이 보인다.
음반을 파는 노점 가게 앞에서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이제는 내처 카투만두까지 달리려나?
#10. 0시의 휴식.
오후 11시, 산길을 오르던 버스가 멈춘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나 보다.
그런데 잠깐 기다릴 듯하던 기사가 시동을 끄고 길 옆 간이 식당으로 들어간다.
덩달아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내려 찌아(밀크티)를 마시러 간다.
다른 네팔 총각들을 물리치고 주도적으로 서양녀에게 작업을 걸던 친구가 자는 사람을 깨워 찌아를 마시라고 한다.
피곤해서 만사 귀찮아진 서양녀가 짜증스럽게 거절한다.
'저러면 좋던 감정도 사라질 텐데...'라는 걱정을 내가 왜 하는 거지?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다.
#11. 지붕 위의 무거운 짐을 내리다.
새벽 3시, 카투만두 외곽에 선 버스가 지붕에 이고 온 짐을 내린다.
서랍장, 이불, 선풍기, 의자, 커다란 철제 박스, 압력솥 등등, 한 살림 차려도 되겠다.
짐을 그대로 길에 두고 버스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사탕수수를 내린다.
버스는 가벼워지는데 나는 무거워진다.
개들이 몇 마리 나타나 사납게 짖다가 정비사가 던진 돌에 꼬리를 내린다.
내가 던졌으면 아마 놈들에게 물어뜯겼을 것이다.
#12. 카투만두로 들어오다.
드디어 카투만두 버스 스탠드에 도착한다.
새벽 4시 30분. 춥다. 입김이 폴폴 나온다.
버스 짐칸에 실은 배낭을 내리니 먼지가 쌓여 커버 색깔을 알아볼 수다.
커버를 벗겨 내고 배낭을 터는 사이 숙소 호객꾼이 다가온다.
"숙소 정했어?"
"여기서 쉬다가 6시에 타멜(종종 방콕의 카오산과 비교되는 여행자 거리)로 갈 거야."
"우리 숙소는 지금 문 열었어. 온수도 잘 나오고. 타멜은 24시간 체크아웃 시스템이야. 나랑 가면 너는 내일 오후에 체크아웃할 수 있어. 얼른 가서 샤워하고 자. 추운데 여기서 왜 떨어?"
"......"
"꼬끼오!"
오늘 새벽에도 닭은 운다.
닭은 닭이다. 녀석은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울어 자기를 확인시킨다.
갈 듯 말 듯 망설이는 작전으로 가격을 조금씩 떨어뜨린다.
처음에 제시한 가격에서 절반 정도 떨어지자 호객꾼을 따라나선다.
그래도 비싼 가격이지만, 온수 사용과 체크아웃을 오후에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린다.
#13. 잘 자라.
택시(호객꾼과 한패)를 타고 숙소로 가 셔터를 올리고 자는 매니저를 깨운다.
정전이라 지금은 온수 사용이 안 된다며 일단 잠부터 자라고 한다.
먼지를 뒤집어 쓴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침대가 2개인 더블룸이어서 옆 침대의 담요를 한 장 더 덮는다.
그리고 잔다.
잘 자라, 피로와 먼지와 지나온 길과 함께.
2박 3일을 함께한 그 버스.
타이어 수리중.
지금 보니 12명 중 버스 관계자는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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