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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인 도 India

[인도여행]인도 샤자한 아내 뭄타지마할을 그리워하며 만든 타지마할 잘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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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은 ‘대리석으로 쓴 시(詩)’ 혹은 ‘대리석으로 된 꿈’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지극히 마땅한 별명입니다.

 

타지마할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각, 아니 하나의 보석이었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두 아름답다는데..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에서 확인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동방의 나라 인도에 이르러

다른 생명력으로 꽃피운 힌두예술과 만나 이 ‘타지마할’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붉은 사암(砂岩)으로 지은 정문을 지나면, 아름다운 정원 맨 끝에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형용사도 붙여서는 안 되는,

오히려 형용사가 그 아름다움에 누를 끼칠 것 같은

타지마할이 나타납니다.

타지마할을 본 순간에는 누구나 헉 하고 숨을 들이킵니다.

그리고 들이킨 호흡은 가느다란 탄성이 되어 내쉬게 됩니다.

 

 

 

우리가 타지마할을 방문한 시간은 오후 서너 시 경이었습니다.

날씨는 맑기 그지없었고요, 타지마할은 밝은 햇빛을 받아 그 상아색

피부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태양이 질 무렵

붉은 석양빛이 타지마할의 피부를 약간 물들여 아주 색다른 요염함을

보여 주었는데 타지마할은 시간마다 또는 비가 오거나 달빛을 받는다든가하는

기후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타지마할을 세운 왕은 유명한 아크바르 대제의 손자 샤자한입니다.

샤자한은 원래 예술적 취향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일과 중 많은 시간을 보석과 귀중품을 감상하거나 화가나 조각가

또는 장인이 만든 작품을 닦고 들여다보곤 했다는 것이지요.

샤자한은 타지마할 뿐 아니라 타지마할 뒤에 흐르는 야무나 강

건너편에 있는 아그라포트, 델리에 있는 레드포트 등

유명한 건축물을 많이 조성했습니다.



샤자한과 아내 뭄타즈마할은 17년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 동안

열네 명의 아이들을 가졌다니 아마도 결혼 생활 내내 아이 하나는

뱃속에 들어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 아내가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샤자한은 “이제 내 인생에는 아무 즐거움도

남지 않았다.“ 고 탄식하였는데, 그는 즐겁지 않은 인생을 35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뭄타즈마할은 남편이 그렇게 오래 살 줄 알았는지 두 가지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을 세워달라는 것과

절대로 다른 여자와는 재혼하지 말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뭄타즈마할은 정말 좋은 아내였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샤자한이

하고 싶은 일을 딱 유언으로 남겼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야무나 강변에

임시 매장한 샤자한은 타지마할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22년이 걸리는 대 공사였습니다. 막대한 비용은 할아버지

아크바르가 벌어 놓은 엄청난 재산을 풀어 썼습니다.

2만 명의 연인원이 공사에 참가하였습니다. 공사비는 총 3억 루피,

여기 참가한 공인의 월급이 7루피 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아그라는 매우 더운 곳입니다. 그리고 타지마할을 지을 때 기근이

매우 심해 백만 명이나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샤자한 황제는 백성의 사정이야 어떻든 나 몰라라

궁전보다도 더 호화로운 왕비의 무덤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샤자한의 행적은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론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타지마할을 완성한 후 샤자한은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들의 손목을 모두 잘라 버렸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건축물을 짓지 말라는 뜻이었다니 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와 뭄타즈마할 사이에서 태어난 아우랑제브는 할아버지 제항기르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샤자한처럼, 자신의 아버지 샤자한에게서 왕위를 찬탈합니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와는 정 반대의 성격이었던 같습니다.

한 기록에 의하면 그는 “심각하고 비밀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이며

속세를 버린 성자처럼 행동“하고 기도와 금욕생활을 하는 황제였다고 합니다.

 

건축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화려한 생활로 시간을 죽이는 아버지를

그는 증오했다는 전문입니다. 그는 황제답지 않은 검약한 생활을 했고

궁정에서 술과 가무를 금지하는 한편 화려한 건축에 돈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도 어머니처럼 남편보다 먼저 갔는데 그는 적은 돈을 들여 7년에

걸쳐 아내의 무덤을 짓습니다. 그러나 그가 미적 감각이 부족했던지 아니면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있어 그런지 지금은 찾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백성들을 못살게 굴면서 지은 타지마할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데,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튼 아그라 성의 한 쪽 귀퉁이의 격리된 공간에서 샤자한은 죽을 때까지

8년을 삽니다. 거기에서는 야무르 강을 건너 타지마할이 보입니다. 샤자한은

죽을 때 까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다가 세상을 하직했다고

하니 참으로 진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애틋하게 하는 거지요. 쵸컬릿 한 다발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 비해 참 거창한 사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샤자한이 아그라 성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그렸던 것은

30년 전에 죽은 아내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타지마할이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 벽을 손으로 쓰다듬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만큼 수준 높은

예술가였을 것입니다.



타지마할을 지을 때의 음과 양, 호화로운 궁궐과 배곯아 죽는 백성들의

대비는 오늘 날에도 계속됩니다. 관람을 마친 후 정문을 나서니 구걸하는

아이들은 여전했고 한 무리의 소 떼들이 우리 앞을 가로질러 가고 있어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타지마할은 아름다웠습니다.

이거 하나만 보아도 인도에 온 값은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타지마할 앞에서 만감이 교차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 '시간의 뺨 위에 떨어진 눈물'이라는 표현은 인도의 시인 타골의 시에

    나오는 한 귀절입니다. 뜻은 각자 잘 음미해 보시지요.

 

 

 

 

사진: 좌상, 타지마할 정문에서 본 전경

        우하, 타지마할 건물 문 위의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들. 이슬람 문명이

                이곳 힌두 문명과 만나 꽃을 피웠습니다.

        우상, 돌출된 부분이 샤자한이 죽을 때까지 감금되었던 아그라 성의 감옥입니다.

                이곳에서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8년을 살다 죽었습니다.

        좌하, 다른 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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