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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가끔책도읽고

[스크랩] 스티브 잡스 연설문 ?<Steve Jobs` 2005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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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 Bye  스티브 잡스

 

애플 창립자이자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지난 5(현지시간) 향년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 인들은 큰 별이 졌다며 죽음을 슬퍼했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은 6개월 만에 자퇴, 개인용 컴퓨터 개발로 돈방석에 앉았지만 30살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다시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그가 남긴 어록들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서적과 영화 등이 다시 붐을 일으키며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대중들로부터 다시금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애도의 추모 물결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스티브잡스 큰 별이 지다오바마, “잡스는 미국 최고의 혁신가

 

 

스티브 잡스 연설문 <Steve Jobs' 2005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한 곳에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내가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정도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됐습니다. 내 생물학적 어머니는 젊은 미혼의 대학원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두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여자아이를 원했다며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대기자 명단에 있던 내 부모(양부모)는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가 있는데, 아이를 원하십니까?" 부부는 "물론입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비싼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 계급의 내 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썼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는 내 부모가 그들이 한 평생 저금한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고 대학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때는 다소 두려웠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결정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낭만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 방의 바닥에서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5센트씩 주는 콜라병을 되돌려줬고, 일요일 밤에는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제공하는 좋은 식사를 먹기 위해 도시를 가로질러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게 좋았습니다. 이렇게 내 호기심과 직관에 따라 부딪친 것들 중 많은 것들이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리드대학은 아마도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서체였습니다. 나는 학교를 그만 뒀고, 정규과목들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 지를 배우기 위해 서체과목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와, 다른 문자조합사이에 다양한 크기의 사이공간넓이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중 어떤 것도 내 인생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했을 때,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맥에 디자인했고, 맥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첫번째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일 내가 대학에서 그 과목을 청강하지 않았다면, 맥은 결코 다양한 글자체나 font사이의 사이공간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윈도우는 단지 맥을 복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글자체를 갖지 못했을 겁니다. 만일 내가 대학을 그만 두지 않았다면, 나는 서체과목을 등록하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갖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보니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되돌아 볼 때 점을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점들이 언젠가는 여러분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리고 그 무엇이든, 그 무엇인가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점들이 인생에서 연결될 거라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심장을 따라갈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변화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인생에서 일찍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찾았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내가 20살 때 우리 부모님집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차고에서의 우리 둘에서, 4천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30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을까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나와 함께 회사를 운영할 내가 생각하기에 능력이 많은 사람을 고용했고, 첫 해 무렵쯤엔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 대한 관점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리는 추락했습니다. 그때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의 편에 섰고, 그렇게 나는 30살에 쫓겨났습니다. 그것도 매우 공식적으로 쫓겨났습니다. 나의 성인으로서의 전 인생의 중심이었던 것이 사라지고, 그리고 그것은 참혹했습니다.

   

몇 달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기업의 전 세대로 물러나는, 내게 전해졌을 때 바톤을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고, 심지어는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천천히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했던 일을 사랑하고 있다. 애플에서의 사건이 그것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 당했지만, 나는 아직도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지금까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가장 최고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공한 것에 대한 부담이 다시 모든 것에 확신할 수 없는 초보자의 편안함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창조적인 기간 중 하나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이름의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내 아내가 된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에서 첫번째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린과 나는 멋진 가족을 이뤘습니다.

   

만약 내가 애플에서 해고 당하지 않았더라면,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끔찍한 맛의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했던 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인생은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계속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내가 했던 일을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었던 것을 내 자신이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17살이었을 때, 나는 이 비슷한 인용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 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내가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할까?" 그 답이 여러 날 동안 "아니오"라고 이어질 때, 나는 무언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무언가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30분에 스캔을 받았고,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죽음의 준비하라는 뜻이죠. 그것은 앞으로 10년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지 몇 달 안에 말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결정됐으니, 그것이 가족을 위해 가능한한 쉬운 일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 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은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 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통념에 의한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 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

 

감사합니다 <원문보기>

 

첨부이미지

출처 : ♡사선암(四仙岩)!
글쓴이 : 풍월(風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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