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섭지코지...
위험한 것은 발 아래 벼랑만이 아니다.
하늘 한쪽 어둑신해 오는 저 기운도 위험하다.
곧 소나기를 퍼부을 것이므로...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도, 위험하다.
너무 뜨거우므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정말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제 듣기가 싫다
죽도록 사랑해서
가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익고 있는
붉은 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옥상 정원에서 까맣게 여물고 있는
분꽃 씨앗이 되었다는 이야기며
한계령 천길 낭떠러지 아래 서서
머나먼 하늘까지 불지르고 있는
타오르는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로
이제 가을은 남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햇살 아래 앉아
사랑의 창세기를 다시 쓰고 싶다
또다시 사랑의 빅뱅으로 돌아가고만 싶다
詩 김승희
김승희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신 적이 있다.
약 1년 정도...
내가 했던 일들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연구실을 정리하고, 우편물을 챙겨드리고,
새 책이 출간되면 선생님의 지인들의 주소를 적어 책을 발송하고,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의 출석상황을 체크하고 등등...
선생님의 다소 불온하고 퇴폐적인 듯하면서 서정적인 시들을 인상깊게 읽었고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라는 소설집을 두 번쯤 반복해서 읽었던 독자로서
그렇게 가까이 선생님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시를 읽으니,
조금은 불안하고, 조금은 격정적이었던,
내 인생 최대의 방황기였던 그 시기들이 떠오른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는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았고, 살고 있지 않다.
딱 그 시기,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을 겪으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나는,
이제 무척 편안한 마음으로 이 시를 대하게 된다.
여전히 그 시기의 내가 남아 있다면,
'죽도록 사랑해서 죽었다'로 끝나지 않는 이 시에
불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죽도록 사랑했으니 죽어버려!"
라고 절규하듯 외칠지도 모른다.
왠지, 이 시를 쓰실 때의 선생님의 마음이 짚일 것만 같다.
그 시절의 어느 날처럼,
언덕받이 허름한 식당의 아랫목을 깔고 앉아
뚝배기에 나오는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씩 나누어먹으며
옛이야기 주고 받고 싶다.
반찬으로 나오던 푸른 고추가 맵네, 덜 맵네, 호호 입김 불어가면서...
핏방울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은
이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
그리움이 깊어지는 10월의 열번째 날...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교통표지판에 미친 듯이 천착하였더랬다.
만국공용어. 친절한 교통표지판.
길이 구부러졌어요.
시속 50km 로만 달려요.
달리다보면, 나의 하늘과 당신의 하늘이 맞닿은 길이 나올 거예요.
우리, 그곳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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