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문하재자료 제93호
소재지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97
Saranchae of Seogye Park Sedang's house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 1629 - 1703)
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 연구와 집필을 하였던 곳이다.
서계 박세당은 조선 현종 1년(1600)에 과거에 급제하여 내외 관직을 두루 거쳐 현종 9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저술과 제자 양성에 매진하였다.
뿌난 여행을 무지 좋아라합니다.
그래서
흔적 남기기를 좋아라합니다.
의정부와의 인연이 엄청시리 있는데...
그뚜 장암동이란 곳은 오랜 세월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헌디...이곳에 서계 박세당선생님의 고택이 있다는 것과 아직도 후손이 잘~알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 놀랐답니다.
의정부~~시민 여러분~~~~ !!!
우리의 주변에는 이렇게 훌륭한 분의 집이 있다는 것은 자랑입니다.
한번정도 아이들을 댈꼬~ 방문하여 지역의 전통과 아름다움~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워주는 그런 시간 가져보세요~~ ㅎㅎㅎㅎ
자~ 가는 것이 쪼매 거시기 하시다면 뿌나랑 함께 가는 걸루다...
기본지식을 알아보자요~ ㅎㅎㅎ
사랑채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평면구조
사랑채는 동측의 수락산을 배산으로 하고 , 서측 멀리 도봉산을 안산으로 하여자리 잡은 서향집이다.
보편적으로 남향이나 남서향, 그리고 남동향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향보다는 배산임수의 자연지세를 더욱 중요시하여 집의 배치를 이루었던 서계선생의 실학사상과 연관이 깊다고 추정한다 합니다.
어려운가요!? ㅋ
상세한 부분은 문학박사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님의 책자를...
요고는 서계 박세당님 고택 안내책자에 잘 나와 있담서...ㅎㅎ
의정부시 향토역사의 이해
장길수 문화관광해설사님을 찾으시면..^ ^;;;
의정부시청소속이시것죠!? ㅎ
(친절한 뿌나씨..ㅋㅋ)
이곳 마당에 우뚝 서있는 은행나무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수 령 : 약 420년
수 고 : 27m
나무둘레 : 6.5m
아마도 학문을 익히던 유생들이 휴식시간에 머리를 식혀주는 정자목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체적 이미지 한번 봐~ 주시공
요즘같은 겨울에도 찾아보는 즐거움은 이런 눈과 함께하는 운치 아닐까요!? ㅎㅎㅎ
고택에 서려있는 눈빨과 은은함이 한결 색다른 맛을 주었답니다..ㅎㅎ
사랑채와 영정당을 함께 조망해봅니다.
사랑채 옆으로 하석 박정 영정을 모신곳 으로 가는 대문이 보인다.
이곳을 통해서 바로 갈 수 없었서 영정각을 향에 둘러서갑니당..ㅎㅎㅎ
여행은 발품을 팔아야 한담서..
그래야 많은 이야기 꺼리와 추억이 만들어지고
간혹~~아주~간혹 새로운 구경꺼리도 본답니당
(망구 뿌나생각 ㅋㅋ)
사랑채와 담사이를 이어져 있다능...
운치가 있지 않아요?? ㅎㅎㅎㅎ
(늘~뿌나만 이상한 생각을 하낭..ㅋㅋ)
하석 박정 영정
霞石 朴炡 影幀
The portrait of Haseok Park Jeong
하석 박정 영정당 뒤로 서게 박세당 선생님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무덤은 관직의 직위에 따라 그 자리가 조금씩 달라지므로
이곳은 아버지의 묘소보다 더~위에 선생님의 묘소가 있는 조금은 색다른 느낌의 묘소입니다.
영정당 담에서 본 뒷산의 묘소입니다.
보통은 가장 큰 어른이 가장 위에 있는 묘소들이 많은데
이곳은
관직 위치에 따라 가장 높았던 선생님 묘소가 아버님 묘소 위에 자리하고 있다합니다.
묘소에서 사랑채를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아마 오랜 세월 선생님께서는 이곳을 이렇게 늘~제자들과 후손들을 바라보면서 계시지 않았을까요!?
사랑채에서 보는 앞마당
학문을 하는 이야기중에 배우고 익히는 이곳에 볼수 있는
나무(?)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사랑채를 왼쪽으로 끼고 수락산으로 부터 내려오는 계류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궤산정이 보입니다.
궤산정
조선 숙종때 실학파의 선구자 서계 박세당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17세기에 건립된 것입니다.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 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라"
는 뜻의 교훈을 주려고 붙인 이름이라고한다.
서계 박세당 선생의 글씨가 암각되어있답니다.
궤산정 앞의 흐르는 물 앞으로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는 것도
이곳을 찾았을 때의 여행 팁!! 되는 겁니다..ㅎㅎ
서계 박세당 선생은 조선 조정의 당쟁에 실망하여 이곳으로 낙향하여...
선생이 40세에 관료 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의정부시 장암동(당시 양주 석천동)에 칩거하면서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던 곳.
그 동의저술서가 바로 '색경'
(뿌나가 어릴적 역사교과서에 배웠던 유명한 책입니다.^ ^)
물론 요즘 학생들도 알것지만도..ㅋㅋㅋ
'맹자가 말씀하시길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절개를 옮겨 놓지 못하며
위무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을
대장부라 한다고 하셨거늘
천년의 뒤에서 구해보노라면
이 말씀에 부합되는 이는
오직 선생 한 분 뿐일지니'
-이덕수가 찬한 서계선생묘갈명의 일부-
이곳 사랑채을 왼쪽으로 위로 걸어가면 궤산정과 청풍정 노강서원을 만날 수 있답니다..그럼 이곳은 다음에...^ ^;;;
보너스~ 청풍정 ^ ^;;;
*청풍정유지 (淸風亭遺址) 서계 박세당(朴世堂)선생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을 추모배형(追慕配亨) 하기 위하여
충렬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지어 유생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講論)하던 곳이다.
청풍정이 있던 자리 추춧돌 옆에는 박세당의 처남 남구만이 썼다고 하는 수락동천(水落洞天) 이라는
초서 글씨가 암각되어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세종17)~1493(성종24).
호는 매월당 법호는 설잠(雪岑)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문인,생육신의 한 사람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중인 21세(1455년)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소식을 듣자 삭발하고 승려(법명설잠)가 되어
전국을 유람하던 중 1471년(성종2)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수락산 내원암 근처에서
10년을 생활하였다고 한다.
1483년 다시 방랑의 길을 나섰다가 충남 부여의 무랑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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