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려온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해 30일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나 철학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한 채 64년의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그는 1947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마친 뒤 서울대에 입학하면서 세상이 선망하는 코스를 밟아간다.
그러나 청운의 꿈을 펼칠 이 벅찬 순간이 결국 그에게는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의 출발점이 된다. 대학시절 그는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는데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이후 그는 재야운동을 이끌면서 수배와 투옥생활을 반복한다.
지난 83년 민주화청년운동연합의 초대 의장을 맡고 85년 민청년이 이적 단체로 규정돼 구속되면서 또 한 번 고비를 맞는다. 그 해 9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이근안 경감으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최근까지 그를 괴롭힌 파킨슨 병도 고문에 의한 후유증이라고 한다.
그는 95년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정계에 진출 국회의원(96년), 보건복지부 장관(2004년), 열린우리당 의장(2006년)을 지내며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지난 2002년에는 대권주자로 나서기도 했으나 광주 경선을 앞두고 당시 노무현 후보로의 개혁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꿈을 접는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정국은 그의 행보를 다시 주목한다. 그 해 5월 3일 그는 강원도민일보를 방문 특강을 통해 정치지도자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수배시절 춘천의 누나 집에 기거했던 일과 삼악산 등반했던 추억, 1년여 동안 강릉교도소에 수감됐던 일 등 강원도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그리고 그 해 대선의 쟁점이 돼야 할 3가지 이슈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는 국민화합과 통합, 둘째는 청년일자리 확보, 셋째는 한반도의 평화다. 특히 한반도 안정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나아가 남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의 3자선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인 6월 12일 그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또 한 번 무대를 내려선다. 지인들 가운데는 결정적 고비에서의 결단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평생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주 따뜻한 사람으로 추억한다. 그가 꿈궜던 미완의 삶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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