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 이연(異緣)<원태연>
당신 친구들이 당신의 생일 케익에 촛불을 켜 주었을때
내 친구들은 힘없이 물고 있던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당신이 오늘 약속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을때
난 오늘도 없을 우연을 기대하며
당신이 좋아했던 옷을 챙겨입고 있었고
당신이 오늘 본 영화내용을 친구들과 얘기하며
그 영화에서 느낌이 좋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난 우리가 왜 만났고 왜 싸웠고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지를
빈 술잔을 채우는 친구에게 얘기하며 채운잔을 또 비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무 생각없이 호출기에
메세지를 남기면 연락드리겠다고 녹음 했을때
난 그 목소리라도 밤새도록 반복해 들으며
전할수 없는 메세지를 달래고 있었고
당신이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놀라 어느 처마 밑으로 피해 있을때
난 내리는 그 비를 다 맞으며
당신이 피한 그 처마 밑을 찾으러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일기장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때
난 보여주지 못할 편지를 끄적이며
어김없이 찾아올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당신이 그해의 첫눈이 반가워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고 있을때
난 당신이 내 호출기 번호를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출이 올때마다 철렁 내려 앉는 가슴을 느끼며 첫눈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책상정리를 하다 미처 버리지 못한 내 편지를 읽으며
의미 없는 미소로 아무런 느낌없이 그 편지를 휴지통에 넣을때
난 그옛날 내가 보낸 편지의 어느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머리속으로라도 다시 고쳐쓰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새로 나온 음반의 어느 가사가
너무 좋더라며 음미하고 있을때
나는 나하고 절대 상관없는 슬픔인지 알면서도
무너지는 그 가사에 또 한번 가슴이 내려앉아 함께 무너지고 있었고
당신이 한 남자를 얻었을때
나는 영원히 한 여자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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