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무진과 훌란 공주의 몸에도 솔롱 고스의 혈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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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룬부이르 몽골 초원은 물과 목초가 풍부한 곳이다. 동명성왕으로 추정되는 고올리 칸, 칭기즈칸과 발해 공주 이야기 등의 무대이기도 한다. <김문석 기자> |
한갓 박제된 동물 하나에 이렇게 매달린 것은 ‘조선’이 아침의 나라라는 전거도 전혀 없는 허황된 해석과 맞먹는, ‘솔롱고스’가 무지개의 나라라는 한국인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을 아주 긴요한 실물 자료기 때문이다. 몽골학의 거장 펠리오가 맨 먼저이를 문제로 제기했다. ‘솔롱고스’는 ‘솔롱고’의 복수로, 솔론을 잡아 모피(Fur) 시장에 팔아서 먹고사는 부족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몽골비사’에도 이런 식으로 부족의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칭기즈칸 ‘출생의 비밀’ 담긴 어원
에벵키 민족박물관에 전시된 솔롱고스 박제. 한국인의 원류와 한·몽 관계의 그릇된 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긴요한 실물 자료다. <김문석 기자> |
몽골에서 한국인을 솔롱고스라고 부르는 연원은 칭기즈칸의 ‘출생의 비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바이칼 호로 흘러드는 셀렝게 강 일대에 자리 잡은 메르키드족 가운데 우두이드 메르키드 톡토아베키의 아우인 예케 칠레두가 아내를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난다. 약탈자는 칭기즈칸의 호적상의 아버지 예수게이이고, 약탈당한 여인은 칭기즈칸-테무진의 어머니 후엘룬이다. 그는 물이 대흥안령 북서부 부이르 호수로 흘러드는 황하 강 지역의 처가에서 데릴사위로 있다가 그들의 관행에 따라 임신한 아내 후엘룬의 출산을 위해 고향으로 함께 귀가하던 길에 오논 강변에서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이 때문에 테무진의 생부는 예수게이가 아니라 예케 칠레두라는 것이 비공식적으로는 거의 공인된다. 칭기즈칸이 몽골 혈통이 아니고 메르키드 핏줄이라는 얘기다. 다구르족 몽골학자 아르다잡 교수는 메르키드는 발해의 말갈(靺鞨)이라고 고증한다.
그렇다면 칭기즈칸의 혈통적 소속은 발해 유민국, 곧 당시의 솔롱고스가 된다. 그런데 당시의 몽골 고원에서는 아내를 빼앗기면 반드시 보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20여 년 후에 예수게이의 호적상 아들 테무진도 20대에 예케 칠레두의 아우 칠게르 부쿠에게 아내 보르테를 뺏긴다. 당시에 약체였던 칭기즈칸은 맹렬하고도 노회한 외교로 부족들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자신의 친아버지가 되는 예케 칠레두의 혈족 메르키드를 섬멸시키고 뺏긴 아내를 되찾는다. 그렇게 되돌아와서 낳은 아들이 장자 주치다.
몽골 역사상 전설적 미인 훌란 공주
한·몽 관계사의 첫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헤름투. 칭기즈칸과 발해 유민국의 훌란 공주가 총야를 지낸 이곳에 지금은 붉은 버드나무로 만든 오보(서낭당)가 서 있다 <최낙민 제공> |
메르키드를 섬멸한 후 칭기즈칸도 메르키드족의 아내와 딸들을 차지했다. 더러는 딸은 자기가 갖고 어미는 아들에게 주기도 했다. 우와스 메르키드 다이르 우순 칸의 딸인 훌란 공주도 헌납됐다. 훌란 공주는 몽골사상 전설적인 미인으로 알려지고 있어 원말의 기황후와 함께 한국 여인은 아름답다는 인상을 몽골인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솔롱고스, 즉 고려 여인이다. 당시의 솔롱고스는 발해 유민국이었고 발해는 외교문서 상에 고려로도 자칭했다.
알려진 대로 훌란 공주는 17세기 문헌인 ‘몽골원류’와 ‘알탄톱치’에 솔롱고스의 공주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솔롱고스가 발해이고 메르키드가 솔롱고스로 기록됐다면, 메르키드는 말갈일 수 있고 메르키드의 공주 훌란은 솔롱고스 공주가 된다. ‘알탄톱치’는 놀랍게도 훌란 공주의 아버지 다이르 우순 칸을 보카 차간 한이라고 적고 있다. 보카이(Booqai)의 보카란 ‘늑대’의 존칭어로 몽골에서 발해를 일컫는다. 차간은 ‘하얀’의 뜻으로 젖색을 상징하는 귀족 색깔이다. 즉 발해(渤海) 백왕(白王)이 되는 것이다.
결국 훌란 공주는 발해(유민국) 공주이고, 그래서 솔롱고스(한국) 공주라고 썼음이 자명하다. 몽골인에게 메르키드-말갈은 타이가에서 활을 쏘아 사냥하고 전투하며 사는 숲속의 사람들이다. 메르겐(麻立干: Mergen)이라는 명궁수의 복수형에서 유래된 부족명으로 이족(夷族)이랄 수도 있다. 따라서 메르키드는 흥안령 북부나 스텝과 타이가가 혼재하는 셀렝게 강 일대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발해와 역사적으로 밀착 관계를 맺어왔을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발해의 고급 문명을 체득하고 철의 주산지인 셀렝게 강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강력한 무력을 과시했다. 더군다나 이 지대는 솔롱고스 부족의 원주지로 알려진 곳이 아닌가. 솔론족은 바이칼 호 동쪽에서 헨티 산맥에 걸치는 지역을 원주지로 하면서 초원의 주변으로 동진하기도 하고 초기에는 주로 셀렝게 강을 타고 서진한 것으로 보인다. 훌란은 셀렝게 강과 오르홍 강의 합류지점에 살던 우와스 메르키드 다이르 우순 칸의 공주다.
근하지역은 북부여를 세운 고리국 터
몽골 도로노드 아이막 할힝골 솜온 숑크 타반 톨로고이에 있는 석인상. 현지 원주민들이 '순록치기 임금'이라는 뜻인 '고올리칸 훈촐로'로 부르는 이 석인상을 수미야바아트르 교수는 동명성왕으로 비정하고 있다. <도브도이 바야르 교수 제공> |
7월 23일에 탐사단원들은 근하에 들어섰다. 영하 40~50℃까지도 내려가 호랑이가 못 사는, 대흥안령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다. 근하는 ‘껀허‘로 발음되는데, ‘껀’은 물이 ‘깊다’는 군(gu:n)이 아니라 빛이 ‘밝아오다’나 물이 ‘맑아지다’라는 뜻의 게겐(gegen)이라고, 구몽문(舊蒙文)인 내려 쓴 꼬부랑 글씨로 적힌 위구르친 비칙 현지 팻말을 보고 에르덴 바타르 교수가 지적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르 가라크’-‘해 뜨는’이라고 하여, 솔롱고스라는 국명이나 종족명 앞에 으레 따라붙는 수식구와 동일한 내용의 이름이어서다.
나는 이미 이 지역을 동명왕이 말치기 노릇을 하다가 도망 나와 동남하해서 북부여를 세운 고리(槁離: Qori=순록)국 터로 추정해본 터여서 더욱 그랬다. 껀허의 ‘껀(根)’이 ‘동명(東明)’의 뜻을 가지리라고 이전에는 미처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바이칼 동남쪽이 원주지였던 솔롱고스 부족에 붙어내린 관용구에서 비롯된 이름일 터다. 수미야 바아타르 교수가 1990년 5월에 몽골 문화사절단 통역으로 따라와 내게 건네준 첫마디가 부이르호 남쪽 호반에 선 고올리 칸 석인상이 바로 ‘솔롱고스’ 임금인 ‘동명’ 성왕이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를 경악케 했다. 몽골 스텝엔 발도 들여놓아본 적이 없는 농경권 붙박이인 당시의 내게는 기마 양 유목민의 거리 개념이 있을 턱이 없어서다.
실로 이때까지 필자는 바이칼 동남부 셀렝게 강변의 메르키드 공주 훌란이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의 하일라르 강변에서 칭기즈칸에게 헌상되고 헤름투라는 곳에서 초야를 보냈다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너무나도 먼 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농경적 거리 관념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임을 유목 현지 답사 경력을 쌓아가며 점차로 깨달았다.
훌란 공주가 나이도 다른 아내들보다 어려 앳되고 아름다웠겠지만, 필시 고국 또는 고향의 동족이어서 칭기즈칸이 그토록 그녀를 사랑해 전장에까지 늘 함께 간 것 같다. 1990년 초에 몽골에 살면서 나는 몽골 소녀들을 많이 만났다. 그녀들은 저마다 자기가 한국 여자를 닮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너는 많이 닮고 너는 조금 닮고 넌 아주 안 닮았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몇 번인가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그녀들의 표정이 저마다 서로 달라지는 것을 알았다. 한국 여인을 닮았다는 게 아름답다는 말이 되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훌란 공주의 전설적인 미모를 떠올렸음이리라. 많아 닮았다는 말을 들은 소녀는 나를 대하는 눈빛이 금방 달라지며 반색했다. 지금 우리가 만나온 이곳의 바르쿠족 몽골 처녀들도 그랬다.
<주채혁 :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몽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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